추석도 지나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벼 수확기에 접어들었다. 올해 유난히 폭염과 가뭄이 전국을 휩쓸었지만 다행히도 벼농사는 풍년이다. 그러나 이 풍년 소식을 반기는 사람은 없다. 재고가 창고마다 넘쳐나고 있는 상태에서 많은 신곡이 유통될 예정이니 재고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역농협RPC도 농민들도 한숨만 짓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정부의 쌀 재고량은 190만톤으로 사상최대치를 달성했다.
3년째 풍년, 넘치는 구곡과 넘쳐날 신곡
벼 수확기가 다가오면서 수급문제가 코앞에 닥쳐있다. 사실 재고 쌀은 농협이나 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농민은 당장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정부가 재고를 해결하지 못하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쌀값 폭락이 진행되면서 그때부터 비로소 농민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2년 풍년이 들고나면 흉년이나 재해로 인한 피해가 생기곤 했는데 올해는 3년째 풍년이다. 재고문제까지 겹쳐 가격이 떨어질 것이 분명한 상황인 것이다. 현재 전국에서 재고가 가장 많이 쌓인 곳은 전남이다. 7월 말을 기준으로 전남의 재고는 8만8000톤으로 제일 심각하다. 강원도도 재고가 1만4000톤이나 쌓여 있는 상태. 경기 지역의 경우 보통 7월 말, 늦어도 8월이 되면 재고를 찾아볼 수 없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경기 지역마저 9월까지 재고가 쌓여있는 상태다. 현재 농협 재고는 33만8000톤으로 지난해 7월 말과 비교하면 6만5000톤이 더 많은 수치다.
25년 전으로 돌아간 미친 쌀값
쌀값이 투매하다시피 내려가고 있다. 수확기 쌀값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쌀값 하락은 농협RPC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조벼 가격마저 올해는 가격폭락이 나타나면서 심상치 않다. 햅쌀이 추석선물로 나가고 대형마트에서 소비가 활발한 편임에도 4만2000원이다. 수확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가격도 계속 떨어져 4만원도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만연해 있다. 지난해 이맘때 평균가격 5만1천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만원 이상 떨어져 20%나 하락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1년 (80kg 기준) 통일벼는 9만5700원, 일반 벼는 11만3700원이었다. 지금 쌀값은 80kg으로 환산해보면 11만5500원이다. 쌀값이 25년 전인 1991년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전국 농협RPC 가운데 흑자가 난 곳은 60곳인 반면 적자가 난 곳은 93곳이다. 전국의 농협RPC 적자 수준은 2014년 305억원, 2015년 340억원, 올해는 270억원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충남에서 적자를 많이 해소했기 때문에 추정치를 낮게 잡았지만 수확기 쌀값이 우리 예상보다 더 낮아지면 적자는 예상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 농협RPC의 최근 3년간 누적적자가 1000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농협RPC도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이제 수매 기능이 중단된 암담한 농업시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부의 지혜가 필요한 때
쌀값 폭락의 피해는 농민에게 돌아온다. 농협의 적자도 농민조합원들이 책임져야 한다. 쌀의 품질은 향상되고 균일해졌을 뿐만 아니라 생산비도 낮출 만큼 낮췄다. 이제는 정책의 전환이 없이는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 3만원(20kg 기준)으로 수입쌀 소매가격보다도 떨어진 쌀값에 대하여 시장격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오상훈 기자 jayden@news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