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농경연)이 최근 발표한 ‘2015년도 포도 폐업지원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포도농가의 13%가 경작을 포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면적으로 보자면 전국 포도 재배 면적의 약 11% 정도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지난해 포도농가의 대규모 경작 포기가 발생한 것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수입포도의 급격한 증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칠레 및 미국과의 FTA로 인해 수입포도가 밀려오면서 포도 가격 하락으로 채산성이 급격히 떨어지자 포도농사를 접은 것이다. 지난해 ㎏당 노지 포도가격은 2327원으로 지난 2011년(3361원)보다 크게 하락했다. 시설포도는 ㎏당 4665원으로 2011년(6654원)에 비해 큰 폭으로 가격이 내렸다.
FTA 직격탄, 포도값 전년대비 30% 하락
폐업지원 제도는 지난 2011년 한·EU, 한·미 FTA 대응 차원에서 ‘FTA 농어업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실질적인 수입피해 품목을 대상으로 합리적 수준의 폐업지원금 지급방안으로 마련됐다. 지난해 최종 선정된 수입피해 품목은 노지·시설 포도, 체리, 닭고기, 밤 등 5개 품목. 농경연의 발표에 따르면 이 품목들에 대한 폐업지원금으로 지급된 비용은 전체 4610농가에 약 1150억 원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폐업지원금 지급 내용을 살펴보면 5개 품목 가운데 노지포도 폐업신청 농가가 3702호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시설포도 681호, 밤 114호, 닭고기 70호, 체리 13호 순이다. 폐업 면적으로 보면 노지포도가 1406ha로 가장 많고, 밤 283ha, 시설포도 269ha, 체리 3ha였다.
경북과 충북이 80% 차지, 고령자 많아
농경연의 발표에 따르면 특히 노지포도는 전체 폐원 신청 농가 중 경북과 충북, 두 지역의 농가가 각각 56.1%와 24%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충북은 전체 노지포도 재배면적의 5분의 1가량(18.7%)이 폐업지원 대상이었다. 또한 노지포도 폐원 신청 농가 중 64.9%는 65세 이상 고령농이며, 시설포도의 고령농 비중(39.4%)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신청 농가당 평균 재배면적은 0.4㏊로 전국 평균인 0.5㏊보다 작았다.
이처럼 폐업 신청 농가의 대부분이 재배규모가 영세하고 고령농 위주라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호당 평균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경영주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구조 조정 효과는 일부 있을 것으로 농경연은 예상하고 있다. 물론 포도 경작을 포기하는 것이 단순히 영세한 규모와 경영주의 노화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포도 소득율과 단위면적당 소득액은 다른 과실류(사과, 배, 복숭아)와 쌀에 비해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포도의 실질 가격은 꾸준히 하락했다. 이로 인해 2000년대 들어 포도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또한 생산 감소가 진행되는 동안 수입 포도의 진출도 무섭게 늘어나고 있어 생산자들의 불안감과 생산 의지를 꺽은 것으로 보인다. 단적인 예로 2004년 9970t이던 포도 수입량은 지난해 6만6192t으로 7배 가까이 급증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폐원농가중 47%는 다른 작목으로 전환, 풍선효과 주목해야
포도농가의 대규모 폐원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국내 생산량의 감소와 포도가격의 안정화에 일부 기여는 하겠지만, 수입포도가 상대적으로 더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과연 가격 안정화에 기여할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포도 과수원 폐원후 발생할 수 있는 대체 작목의 풍선효과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포도 재배농가가 포도과원 폐원후 다른 작목으로 변경할 경우, 그 작목 역시 생산량 증가로 인한 가격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 한 지역의 경우 폐업 후 해당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자두, 복숭아, 사과, 살구 등 다른 과수로 전환하겠다고 응답한 농가 비중이 47%에 달했다. 충북도 폐업 농가 100호 중 56호가 복숭아, 딸기, 자두 등으로 전환할 것이라 밝힌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농경연은 풍선효과 최소화를 위해 지자체와 농업기술센터가 해당 지역에 맞는 대체작목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기술지도 서비스를 병행하는 것은 물론 지자체별로 다양한 대체작목을 발굴하고 시범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더불어 폐업지원제도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포도산업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숙제도 풀어야 할 것이다.
< 포도 폐업 신청 농가 대상 작목 전환 의향조사 결과> (경상북도 Y시)
< 연령대별 포도 폐업 신청 농가수 분포 >
오상훈 기자 jayden@news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