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산업은 점차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산업 중 하나이다. 정부의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 및 농가수ㆍ농업 면적 감소 등으로 농약 사용량은 줄어들고 있다. 다만 고가의 농약 신제품이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있어 판매금액 면에서는 조금씩 성장세를 보이는 산업이다.
농약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주장은 농약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농약의 등록 단계에서 잔류, 독성, 생산자ㆍ사용자에 대한 안전취급 기준 등을 설정해 농약을 평가하고 있다. 특히 이 기준에 통과하지 못하는 농약은 등록 자체가 되지 않는다. 즉 현재 판매되고 있는 농약들은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제품들이라는 것이다.
현실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느끼는 농약의 위해성은 심각하다. 맹독성, 먹으면 죽는 것 등 농약 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나오기라도 하면 소비자들은 발작 증세와 같은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이에 따라 농약이 미치는 순기능에 대한 가치는 평가 절하되고 있고 많은 전문가들은 이 부문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약 사용을 안 할 경우의 문제를 부각시켜 보아야 한다”면서 “생산량 저하로 농산물 가격 폭등 등의 현상이 나타날 경우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약 안전성 역으로 순기능 어필해야
특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은 기업가ㆍ경영인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민들이 힘들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가라면 자신이 판매하는 농산물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농민들의 농약 사용에 대한 기준을 지키는지 여부를 정책적으로 관리ㆍ단속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현재도 관리 방안 및 과태료 등의 조항이 있으나 경미한 처벌에 한정돼 있고 홍보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와 함께 잔류농약은 이미 평생 먹어도 영향이 없을 만큼의 양을 기준으로 선정해 관리되고 있는 만큼 농산물 섭취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농약을 살포하지 않은 농산물이 생산해내는 방어물질도 독성이 있지만 사람은 이 같은 독성 물질에 지속적으로 적응해 왔기 때문에 미량의 농약 노출에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기작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너무 깨끗한 것은 반대로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울러 농약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원천기술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매년 기술개발 분야에 일정량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나 농약 신물질을 국내에서 개발하는 것을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농약 신물질 개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업계 관계자조차 “국내 농약 신물질 개발 지원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은 이미 식상한 얘기”라며 “이 화두를 꺼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국내 농약 신물질 개발에 대한 정부 및 업계의 관심도가 어느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이처럼 농약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대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여기고 있다. 이에 따라 농약 산업을 한 단계 발전 시키는데 유통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농약 유통 구조를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구조’라고 일축한다.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이 농약 유통 구조가 비슷하지만 유독 한국만이 상식선을 벗어난 마진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그림 1>과 같은 형태의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농약 자체가 귀해 농민들도 적극적으로 농약을 구입하려는 형태를 보여 제조사들에게 힘이 실려 있었다. 이에 따라 제조사들의 마진은 50~70%를 유지했다. 하지만 현재는 농판과 농협의 발달로 제조사의 마진이 10%로 줄어든 상황으로 업계 관계자는 전하고 있다.
전 세계서 가장 복잡한 농약 유통
농판은 소매상 50여개가 모여 법인을 설립하고 공동구매를 통해 농약을 싼 값에 구매해 판매하고 있다. 제조사들은 10~15%의 마진을 남기고 농판이나 소매상에 농약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소매상들도 농민에게 농약을 30~40%의 마진을 남기고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농협이 영일케미컬을 인수하면서 농약 유통의 판도가 달라졌다. 2000년대 초 25% 정도의 시장을 가지던 농협이 영일케미컬 인수 이 후 현재 60%의 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농협은 차손보존, 환원사업 등의 명목으로 농약을 주변 시판보다 30% 싸게 공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도매업을 하는 일부 시판은 농협과 경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을 파악하고 농협에 적은 마진을 남기고 납품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A 제조사로부터 마진을 30% 약속 받았다면 전체 품목별로 10~50% 등 마진폭이 다르지만 한꺼번에 30%로 계산해 10% 마진 품목도 30%로 싸게 공급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품목을 농협에 싸게 납품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국 국토의 100분의 1 크기에 불과하고 미국의 120분의 1 크기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그런데 농약 판매금액으로는 전 세계 10위권에 들고 있다. 게다가 대만은 우리나라의 3분의 1 크기에도 불구하고 농약 회사가 50여개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최근 합류한 제네릭 회사들을 합쳐도 1조3000억원 시장에서 20여개 남짓의 회사가 활동 중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단가가 높은 고가 농약만을 사용하는 것인지 반문해볼 일이라고 농약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또 다른 농약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농약 유통이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각 회사의 영업직원을 다 합하면 1000명에 육박하는데 유통 매장은 5000여 개로 1인당 5곳을 맡고 있는 격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쟁이 심화되고 농협과 시판에 지속적으로 유통 비용을 추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농협이 환원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용고배당 등을 이용하지 않고 바로 농약 가격 할인판매를 실시해 경쟁을 심화 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복잡함과 비용을 더하는 환원사업
또 농협중앙회와 시담 계약 후 단위농협에서 추가 약정을 실시하니 이중으로 수수료를 내는 꼴이다. 특히 단위농협은 자체사업이 있어 중앙회와 사업이 이원화 돼 있다. 여기에 은행금리 12%를 적용하는데 농협은 연말결제를 기준으로 삼고 있어 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받으면 이자를 지급하고 결제를 받는 구조이다. 물론 농업의 특성 상 농자재 결제 시기가 연말이기에 이 같은 구조가 탄생한 이유가 되고는 있다.
게다가 영세율 적용 분에도 이자가 적용되고 있어 제조사의 마진은 더욱 줄어들고 있는 상태로 파악된다. 또 리베이트 제도도 유통을 복잡하게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처음 1%로 시작된 리베이트는 현재 40%까지 치솟은 상태이다.
예를 들어 표준가격이 1만원인 농약을 30%의 리베이트를 적용해 공급할 경우 계산서가는 8000원을 쓰고 제품이 판매된 이후 1000원을 돌려줘 30% 리베이트를 맞추게 된다. 마진 폭이 줄어든 시판상들은 리베이트만으로 제품 판매에 나서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공동방제 사업에도 경쟁이 치열하고 이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약제 선정을 군ㆍ도 단위로 결정해 왔으나 민원소지가 높아 이장, 농민 등이 제품 선택권을 가지고 있어 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실시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에 따라 소요인원과 비용이 높아지고 있다.
농약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이자, 수수료, 판촉 비용 등을 모두 제외하고도 농약 회사가 가져가는 이윤이 10%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특히 신물질 개발에는 비용을 전혀 투자하지 않고 있어 제조업 마진으로는 엄청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제조사들의 높은 마진 구조는 중국 등에서 제네릭 농약이 대거 들어오면서 또 한 번 무너졌다. 하지만 2010년 말부터 대거 등록된 제네릭 농약들은 이 후 다시 높아진 등록 기준에 따라 주춤하는 모양새가 됐다.
농약 업계 관계자는 “유통을 투명하게 하고 농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라도 기득권이 보호되는 현재의 제조업계에 신규 회사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피력했다. 제네릭이라도 제품에 문제가 없으면 자유롭게 업계에 진출해 영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농약 유통의 질서를 농협을 통해 정비하겠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농약 업계 관계자는 ‘추가 약정’ 제도가 가장 시급히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꼽을 정도이다.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마진 제도가 정비돼 투명하게 유통이 이뤄진다면 그 혜택은 농가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최종적으로 국민들에게 그 이익이 돌아갈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