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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치 못한 화학비료업계 담합판정

[발행인 칼럼]

공정거래위원회가 농자재업계에 대한 전방위적인 담합 적발과 과징금 부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상토회사, 농업용 필름 제조회사, 화학비료와 농기계 및 농약회사 등 농자재업계 공히 가격담합을 통해 엄청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농자재업계의 실상은 그와 전혀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

최근 수년간 경영수익이 급격히 줄어들거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농자재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가장 앞서 과징금을 부과 받은 상토회사와 필름회사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업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시장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사실만으로 담합판정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실제 막대한 수익이라도 올렸다면 억울하지나 않겠다는 판단에서다.

최근에는 화학비료업계의 담합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공정위는 1차로 13개 화학비료회사에 828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발표에 의하면, 화학비료업체들은 농협중앙회(산림조합)가 발주하는 구매입찰에서 비종별로 기간의 차이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1995~2010년에 걸쳐 물량배정과 가격담합을 해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관련된 물적 증거도 첨부해 법에서 말하는 담합사실을 부인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특히 공정위는 장기간 고착화된 시장담합 관행과 구조를 와해시켜 실질적인 가격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농업인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공정위는 현장조사 이후 2011년도 맞춤형비료의 경우 가격이 21% 낮아져 농업인 부담액이 전년대비 1022억원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화학비료업체들의 입장은 공정위의 결정과 사뭇 다르다. 근본적으로 대부분의 비료회사는 매년 적자(혹은 상대적 경영수익 소규모)를 면치 못하고 있고,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구조적인 화학비료의 구매와 판매 프로세서인데도 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담합결정을 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16년간 무려 1조 6000억 원의 부당이익을 수취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전혀 사실무근이고 억울하기만 하다는 것이 비료회사들의 일치된 반응이다.

화학비료업계에서 반발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들어보자.
우선 화학비료 시장은 그야말로 시장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비료 시장에서 농협중앙회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이다(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2조 7항). 단독 수요자로서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수량·품질 기타의 거래조건을 결정·유지 또는 변경할 수 있는 시장지위를 가진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화학비료의 98% 이상이 농협수요자 물량임을 감안할 때 농협중앙회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임이 명확하다. 바꿔 말해 비료회사는 생사여탈권을 거머쥔 농협중앙회의 의도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만큼 시장구조의 문제가 더 근원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다른 농자재도 다르지 않다.

둘째, 담합의 의도는 결국 수익확대와 연계돼 있다. 담합을 통해 화학비료회사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익을 달성해야만 담합의 목적이 달성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비교적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매출상위 6개사의 1995~2010년 누적적자가 527억원, 연평균으로 보면 33억 원이나 된다.

같은 기간 순이익을 낸 연도는 6년뿐이다. 나머지 기간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이것을 두고 경영수익 증대를 위한 담합의 결과라고 말하는 건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셋째로 비료가격의 실질적인 인상률을 보면 유사업종의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작다. 모든 농자재의 경우 알게 모르게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고, 농협중앙회를 통한 계통구매에 의존율이 높다보니 농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가상승요인이 있어도 결국 가격을 올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11년에도 계약서상 가격인상요인이 충족됐지만 결국 인상하지 못했다.

넷째, 정부의 비료확보 과정을 보면 3~6월 집중적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촉박한 입찰(익년 12~1월 경쟁입찰)이 이뤄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물량을 잠정적으로 확보한 다음 생산을 할 수 밖에 없는 관행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어느 한 기업에서 최저가격에 의해 전체물량을 낙찰 받았다고 하면 현재의 시설로는 도저히 적기에 화학비료를 공급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경시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나 농협, 회사 모두 공유하는 사실이자 관행이며 가격을 올리려는 행위와는 무관하게 봐야 옳다.

다섯째로 농협중앙회에서 입찰하는 방법을 보면, 먼저 비료회사로부터 원가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자체 회계법인이 원가를 분석, 예정가격을 결정한다. 그런 다음 최저입찰가격을 적어낸 회사순서대로 물량을 배정해 나간다. 그러니 비료회사의 수익이 제대로 나겠는가하는 이야기다.

중간에 원가상승요인이 발생해도 반영이 안 될뿐더러 나아가 실제 발주량을 인수하지도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비료회사는 경쟁이라기보다 농협중앙회의 하청생산업자와 진배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담합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농협중앙회가 지배하고 있는 남해화학조차도 지금까지의 관행을 따른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관행적이고 현실적인, 어쩌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단순히 법적인 요건으로 합의서를 찾아내 이를 근거로 ‘명백한 담합이니 과징금을 물어야한다’는 것은 너무 경직된 처사로 밖에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공정위의 최근 결정을 두고 일부 농민단체에서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그렇고, 누구보다 업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할 농식품부 마저도 공정위의 편에 서는 듯한 분위기니 그저 당황스럽다.

화학비료회사도 엄연한 경영체이다. 다시 말해 이들도 적정한 이득을 얻어야 하지 않겠나. 여기엔 농민들의 수긍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보다는 비료생산비 인상요인을 농산물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오히려 중요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농산물가격의 인상을 억제하고, 생산자재가격을 억제한다면 농산물 소비자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농민과 농자재공급회사는 어쩌란 말인가.

손해보고 적자보고 경영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주장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농자재회사들에 대한 일련의 담합판정에 즈음하여 논어의 한 구절을 생각해 본다.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慾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라는 배려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아주 단순한 사실과 규칙만을 가지고 평면적으로 사리를 판단하다보면 중요한 본질을 훼손할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는 경구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의 입장과 전후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중요한 대사를 결정해야 한다는 선인들의 훈계이다. 최근 공정위의 결정은 그래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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