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과 농기계, 비료, 종자 등을 다루는 부서가 분산돼 있는 점도 일관된 농자재 관련 정책 생산의 부재를 가져오고 있다. 그나마 농자재 생산과 대농업인 공급과 관련한 농자재 정책과 제도개선은 눈에 띠지만 농자재유통, 특히 시판에 대한 정책은 불법, 불량 농자재유통 단속 강화가 전부라 할 수 있다. 농자재유통 단속의 대상은 농업 현장에서 식물 처방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시판(판매점). 농업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흡하면서 1년 농사를 좌우하는 종자의 선택과 병해충 예방 등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시판상들의 역할은 농업정책에서 만큼은 온데 간데 없게 된다. 장사꾼으로 치부되면서 단속의 대상으로만 농업정책에서 존재할 뿐이다. 그동안 시판은 단순히 농자재 판매에 그치지 않고 농업기술과 정보를 제공하는데 앞장서 왔다. 농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에 누구나 주저 없이 고객을 끄덕인다. 그러나 시판 스스로 목소리를 낮춘 점도 없지는 않지만 존재가치에 비해 정부 정책에서는 철저하게 소외돼 왔다. 물론 농자재 유통관리는 강화돼야 한다. 농약의 인터넷 판매 등 무등록 농약 판매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야 하고 부정·불량농자재 신고센터의 운영의 활성화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농업 현장과 시판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정책이 추진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례가 빈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농어업경영체 등록과 부가가치세 영세율 적용이다. 농어업경영체에 등록된 농업인에 한해 비료·농약 등 각종 영농자재에 대해 부가가치세 영세율을 적용키로 한 이 정책의 수립과 시행과정에서 직접적인 당사자인 시판상의 의견은 애초부터 들어보지도 않았다. 이 정책은 시행 6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도 시판이 정책에서 배제된데 따른 결과물이다. 종자산업법과 관리법 개정에도 시판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됐다. 종자의 생산 시 포장지에 명기토록 돼 있는 유통기한을 작물별 재배시기와 일치될 수 있도록 조정해줄 것을 시판상들이 요구했지만 무시됐다. 뿐만 아니라 행정규제 완화의 조치로 노점과 꽃집에서도 종자판매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종자유통 단속과 처벌은 시판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
이 뿐만이 아니다. 종자관리법 전 조항이 종자생산업자에 관한 사항으로 구성돼 있지만 처벌조항에만은 종자판매상을 포함시키고 있다. 규제대상 종자도 대폭 확대해 단속과 처벌의 범위가 강화됐다. 시판은 이처럼 농업정책에서는 규제의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으면서 대외 여건은 전문집단으로서의 입지 강화를 요구받고 있다. 정책당국은 농자재 유통질서 확립의 이유로 농업인의 피해 방지와 농업 환경 보전을 제시하고 있다. 농자재 안전성은 농업정책에서도 중요한 이슈중 하나로 꼽힌다. 이에 따라 농약 등 농자재 판매관리인 자격제도 등 판매자의 자질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또 위해성 농약의 회수·폐기규정 마련 등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농약 판매에 있어 오랜 노하우도 중요하지만 역시 농약 전공자가 농약을 판매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될 것”이라며 ‘식물의약사’의 도입을 주장한다. 하지만 식물의약사의 도입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장여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다. 이 처럼 농자재의 안전성이 강조되면서 시판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책에서의 일원화된 농자재 안전성 관리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농자재의 종합적 안전성 평가를 위해서는 농촌진흥청 내 ‘농자재안전평가센터’나 ‘농자재안전관리국’을 설치해야 한다는 연구보고서가 마련되기도 했지만 연구보고에 그치고 말았다. 농자재별로 안전성 평가 과정을 통일하고 관리를 일원화해 유통되는 농자재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농자재와 유통전반을 관리하는 전담부서의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농협과 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시판은 농협과의 경쟁도 하루가 다르게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시판은 농협의 농약시장 점유율 확보 정책과 가격차 보존 정책 유지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당한 경쟁이 애초부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비 계통 농약은 시판만 판매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농협과의 건전한 경쟁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또 시판은 시판대로 시판중심품목 위주로 판매의 우위를 점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몇몇 도매상이 농협에 농약 납품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의 점유비가 공식적으로는 45% 선임에도 연말에 집계되는 농협의 전체 판매량을 보면 60%에 육박하고 있다. 농협의 농약 유통 점유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농협이 2014년에 전국단위의 농자재 유통거점을 3곳에 세운다는 방침을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경 한국작물보호제판매협회 전국지부장협의회장은 “농협과의 경쟁을 위해서는 시판 개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판매협회 차원에서 농협과 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또 시판상의 소양교육도 매일 반복되는 교육이 아닌 변화하는 정서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농협의 아리품목은 다양한데 반해 시판의 중점판매 품목은 그렇지 못한 만큼 다양한 중점판매 품목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작물보호제판매협회 전국지부장협의회는 농어업경영체 등록과 부가세 영세율 적용과 관련해 카드단말기 운영업체와 협의해 기존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키로 하는 등 시판의 경쟁력 확보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카드단말기에 프로그램을 도입해 농민의 농업경영체 등록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이와 관련 “컴퓨터 등 정보체계가 미흡한 회원이 전체 회원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현장상황에 열악하지만 협회를 중심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면 농협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농기계업계도 농협과 힘겨운 경쟁을 치루고 있다. 특히 대리점의 부도 등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유통체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농협이 농기계은행사업을 펼치면서 계통판매 농기계도 임대사업용과 같은 가격으로 공급을 요구하면서 빚어진 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다. 종합형 업체들이 농협과 계통구매 계약 과정에서 과도한 할인율을 적용한다며 계약 체결을 거부하면서 빚어진 사태는 농협이 농기계 매취사업을 들고 나오면서 농기계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농기계 매취사업은 지난해 LS엠트론과 트랙터 700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 제품은 NH트랙터라고 불리며 지역농협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올해는 1500대를 공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과 종합형농기계업체의 이 같은 대립은 고스란히 농기계 중소업체와 대리점으로 피해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형업체의 대리점들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경북 상주지역 한 대리점부도 사태를 맞는 등 점점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농기계 중소업체의 경우 일부 농자재 판매상과 대리점 계약을 맺기도 하지만 대부분 종합형업체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있어 대리점의 부도와 경영난은 중소업체들에게는 직격탄으로 날아들게 된다. 그동안 농업의 기계화를 최 일선에서 담당해온 농기계 대리점이 흔들리면 사후관리는 물론중소업체의 농기계시장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농기계임대사업과 수출 등에 초점을 맞춰온 농기계정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농기계 유통에도 희소식은 있다. 농업기계화촉진법의 개정으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중고농기계유통센터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중고농기계 유통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 특히 중고농기계 거래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중고농업기계유통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신설됐다. 유통센터가 설립되면 중고농기계의 상설 전시 및 매매는 물론 유통실태 조사, 중고 농기계 유통촉진에 필요한 사업 추진 등을 주요 사업으로 수행하게 된다. 시판의 결집을 위해선 환골탈태 필요해 농업정책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는 시판과 대리점들이 정책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결집이 요구되고 있다. 현재 전국 3000여 시판을 대변하는 기관은 한국작물보호제판매협회가 유일하다. 판매협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회장과 부회장 7명, 전무와 감사 각 2명, 전국 지부장 12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회장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판매협회는 이번 회장 선거를 기점으로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농협과 경쟁이 보다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여 힘의 결집과 다양한 정책과제를 도출해 이를 반영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또 종자판매협회가 발족하는 등 이탈의 조짐도 보이는 만큼 농약과 종자, 비료 등 각 농자재별 분과위를 구성하거나 담당 부회장을 두는 등의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