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대도시 꽃집 등에서도 농약을 팔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50ml 이하의 소포장 농약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농약을 아무 곳에서나 판매할 수 있게 되는 시발점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이번 사안은 농촌진흥청이 지난 1월 발표한 올해 농자재 유통관리 계획에 ‘인축에 독성이 낮은 소포장 농약의 판매처 확대’ 조항이 포함되면서 불거졌다. ‘전문교육을 통해 화원, 원예자재판매업소 등에서 저독성으로 소포장(50ml) 농약의 판매가 가능토록 판매업 등록요건을 완화한다’는 것이 주 요지다.
(사)작물보호제판매협회는 이에 대해 지난달 8일 협회의 의견을 농진청에 제출했다.
판매협회는 ‘저독성의 소포장이라고 하지만 50ml 이하의 농약 등록수가 300여건 이상으로 많은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농약을 인력이나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화원이나 원예자재판매업소 등에서 판매가 가능토록 허용하는 것’ 으로 판단했다.
특히 ‘농진청 극소수의 인원으로 현재 5000여개소 농약판매소 관리도 어려운 상황으로 화원이나 원예자재판매업소가 저독성의 소포장만 판매하고 있는지 지도·점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정부의 안전관리 강화 정책에 ‘역행’
이와 함께 ‘지난해 시행된 농약관리법에 따라 농약안전사용교육 의무화, 인터넷 판매 금지, 청소년 판매 금지 등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법규정 및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밝혔다.
게다가 농약판매업에 종사하는 유통인들의 자격 요건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의견이다.
판매협회는 이에 따라 ‘농약은 어디에서든 포장단위를 불문하고 법에서 규정한 대로 인력과 시설을 갖춰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글로벌 추세가 소포장 위주의 고가 제품 개발로 소포장의 농약은 그 수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화원, 원예자재판매업소 등도 포장단위 구별 없이 농약을 취급·판매하기 위해서는 기존 판매업자와 동일한 등록기준에 의거해 판매업 등록을 해야 하며 동일한 농약안전사용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것이 판매협회의 주장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꽃집 등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소포장 농약을 1리터 물에 사용할 수 있도록 1g 정도의 제품만 판매토록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판매관리인, 별도 창고 등을 두는 것은 필요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동 관계자는 또 “가정원예용 농약을 판매하는 자도 동일한 요건을 갖춰야 농약판매업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했던 것은 일반 화훼자재도매인 등에서 불법 농약을 유통시키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그 당시 친환경농자재의 품질인증제도 도입 등으로 가정·화훼 시장에서 친환경제품을 많이 판매할 것으로 예상하고 법 개정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지난해 단속을 나가보니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친환경 자재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었다”며 “소포장 농약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대두됐다”고 밝혔다.
화훼협회 몸집불리기용 도구?
특히 소포장 농약 판매가 가능토록 하기 위해서는 ‘전문교육’이 필요해 농진청은 판매업자 교육 위탁 기관에 ‘한국화훼협회’를 추가할 것을 검토 중이다.
애초 이번 사안은 “한국화훼협회로부터 소포장 농약 판매가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여러 번 제기돼 검토가 빨리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화훼협회는 결성된 지 45년 정도 된 단체로 현재 화훼 생산농가 외에도 꽃집 등 유통 회원 1천여명이 가입돼 있다. 임영호 한국화훼협회장은 “대도시에서 소포장 농약을 구하기 어렵다”며 “20말용 농약도 소포장이기는 하나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많고 사용 후 남은 농약을 하수구에 버려 오염을 일으킬 수 있어 1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포장 농약을 꽃집에서 취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소포장 농약을 꽃집에서 판매하면 화훼 산업도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전국 약 3만6000여개 꽃집 중 대도시에 위치하는 꽃집만 2만 여개가 된다. 화훼협회는 이에 따라 2만 대도시 꽃집을 중심으로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 중에 화훼협회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아도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농약 제조업계 관계자는 “화훼협회에서 자재, 유통, 백합, 국화, 난 등의 분과가 떨어져 나와 세력이 약해진 것으로 안다”며 “소포장 농약을 활용해 협회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농약 유통업계 관계자는 “농약을 꽃집 등에서 판매하게 되면 접하는 빈도수가 높아져 점차 농약의 관리 중요성이 희석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농약과 같은 대상은 한정된 곳에서 판매해야 하는 관리 대상이기 때문에 판매 자격 완화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농약 전문가는 “담배를 어디에서나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돼 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담배를 특정 구매처에서만 판매토록 강화하기 어려운 것으로 안다”며 “농약 역시 어디서나 구입 가능하도록 한다면 문제가 생긴 뒤 판매처 요건을 다시 강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관리 대상 품목은 판매 완화 후 사후 단속보다는 애초에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반소비자는 농약 쉽게 구입 ‘좋아’
이처럼 소포장 농약 판매 자격 완화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일반소비자와 농약제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 살펴보자.
일반소비자들은 소포장 농약을 어디서나 구매할 수 있게 돼 베란다 및 주말농장, 텃밭에서 농약 사용이 용이해진다. 화분 하나를 키우더라도 각종 병해충에 시달리기 때문에 농약 사용이 필요하게 되는데 농약 구매가 편리해져 가정원예가 활성화될 수 있다.
더불어 농약 사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잔류농약’이라는 용어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자신이 살포하는 농약은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 실제 농약을 사용해 보면 물 1리터에 0.5~1g 정도의 농약을 녹여 사용해 그 양이 정말 적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제조업계, 시장 늘지만···마케팅비용도 늘어
농약 제조업계는 농약 시장이 넓어지고 거래처가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 업계에서 파악하고 있는 가정원예용 농약 시장은 5~6억원 정도로 작다. 하지만 가정원예용 농약 시장이 활성화되면 그 크기는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스프레이 형태, 알약 형태 등 다양한 제형의 제품이 개발돼 시중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마케팅 비용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 소비자에게 자신의 회사 제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처럼 농업인, 유통업계 등만이 아닌 전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 홍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품 이름이 알려져야 일반소비자들은 꽃집에서 필요한 제품의 제품명을 말하고 구매할 수 있다. ‘게보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