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시작하면서 계획하고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이제라도 다시 일상을 추슬러 보람 있는 날들로 채워나가야 겠다. 사람이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노력하는 것처럼 미생물들도 어떠한 일을 진행하기 전에 사전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하면 믿겨질까? 처음에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고 실험 계획을 고민할 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찮은 세균이 뭐 그렇게 까지 생각을 할까? 훨씬 고등한, 세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우리 인간들도 가끔씩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며 시간을 낭비할 때가 많은데 하물며 세균이야 어련하겠냐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미생물 연구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저 단순한 무생각 무개념의 살아있는 생태계 구성원 정도로 치부하였다. 사실 세균은 크기가 1마이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단세포 미생물인데 1마이크로미터는 1센티미터를 10,000등분을 한 아주 작은 크기이다. (참고로 나노미터라고 하는 단위도 있는데 1마이크로미터를 1,000등분을 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단위를 나타낸다) 얼마 전 1마이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세균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는 사전에 계획을 세워 일을 진행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 일을 주제 삼으려 한다. |
연구소에서 토양 미생물 분석의뢰가 들어와 실험하다 보면 정말로 똑같은 토양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곰팡이나 세균의 종류나 밀도가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농사를 짓는 토양은 그나마 비슷하다. 토양 선충을 분석하다가도 그 밀도나 종류에 있어서 차이가 관찰되어 정말 토양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토양 미생물을 관찰할 때 가끔씩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는 미생물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어떤 특정 미생물 주위에는 다른 미생물이 얼씬도 못하기 때문에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A라고 하는 미생물이 있으면 그 주위에는 다른 미생물이 접근을 못 하니까 아주 깨끗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한 미생물들은 주로 방선균이나 바실러스 속의 세균들일 경우가 많다. 16년 전에 처음 토양 미생물 분석을 시작할 때에는 그러한 미생물들이 정말 신기하고도 놀라워 발견하는 대로 분리하여 보관하곤 했는데 분리하다 보니 너무 많아서 이제는 특별한 미생물 아니면 그리 눈길도 가질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16년 전과 현재의 토양미생물상을 비교 분석을 해보면 미생물의 종류가 편협해졌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토양속 미생물들도 먹고 살기가 빠듯한가 보다. 개체 수나 종류가 줄어들어 웬만한 생존 능력이 아니면 요즘 같은 자연환경에서는 살아남기가 힘든가 보다. 이렇게 다른 미생물을 성장을 억제하는 능력이 뛰어난 미생물을 분리하여 역병이나 탄저병과 같은 식물병원성곰팡이와 싸움을 붙이기도 하는데 간혹 병원균들을 꼼짝도 못하게 KO시켜버리는 쓸 만한 녀석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미생물은 분명히 병원성곰팡이를 죽게 하는 물질을 분비할 거라 확신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분석을 못 해왔다. 그런 작업이 좀처럼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막연하게 길항미생물이라고만 하여 미생물 자재 개발이나 자원화에 사용하곤 하였다. 사전 정보 파악해 체계적 대처 그러나 요즘에는 우리 연구소에서는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하여 미생물이 분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마도 항생물질이나 효소 또는 저단백질일 것이라 막연하게 추정만 하고 있지만 얼마 후면 그러한 물질들이 어떤 물질이고 어떤 원리로 병원균을 죽이는지 알아낼 것이다. 길항미생물과 곰팡이를 대치배양 시키면 길항미생물과 곰팡이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투명한 영역이 발생되는데 이 투명한 영역에 길항미생물이 분비한 물질이 있을 것으로 추정을 하여 그 투명한 영역을 따로 떼어 내어 병원균과 다시 싸움을 붙여보았다. 그랬더니 예상하던 대로 병원균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면 길항세균이 평상시에도 그러한 물질을 분비하여 병원균들을 항상 억제하려고 노력을 할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이번에는 병원균이 없는 상태에서 길항균을 배양하고 그 주위 길항균은 항생물질을 아무 때나 분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위에 적들이 나타날 때에만 무기를 만들어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주위에 적들이 없을 때에는 그러한 물질들을 분비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1마이크로미터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세균이 자기 주위에 적이 와있는지 감지를 하고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인지 경이롭기만 하다. 그동안 단세포 미생물이라고 너무 무시만 해왔던 것은 아닌지 새삼 미안한 생각도 든다. 세균도 우리 사람과 같이 사전에 주위 정보를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어쩌면 우리 사람보다 더 현명한 녀석들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