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량의 부족은 노균병이나 잿빛곰팡이병 등의 곰팡이병과 잎짚무늬마름병 등을 유발하고 있다. 폭염과 폭우는 바이러스병을 옮기는 끝동매미충, 벼멸구와 혹명나방·흰등멸구 등의 발생밀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볼 수 없었던 벼줄기굴파리와 이화명충도 발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추탄저병, 담배나방·파밤나방,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 등의 원예작물의 병해충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오이와 애호박 등 시설농가들은 수확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잎담배는 잎이 마르고 줄기와 뿌리가 썩는 전염병(입고병)이 확산되면서 사상 최악의 생산량 감소를 예고하면서 충북 청주에서 박모(59)씨가 잎담배 농사 흉작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농림수산식품부도 최근 농산물 가격의 상승 원인을 이상기후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인 만큼 채소류는 9월 이후 출하가 정상화되면 가격도 안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일류도 추석이후 햇과일 출하가 본격화되면 가격이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과채류 생산량은 평년에 비해 대폭 줄어 값은 비싸지만 맛은 떨어져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현재와 같은 일조량 부족 상황에서는 9월 추석이후에도 나아질 것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장 농민들의 분위기다. 이례적인 8월의 가을장마로 김장배추 파종시기까지 늦어지고 있어 가을배추 출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부문 영향분석과 대응전략’ 보고서를 통해 “농업인의 36.3%가 5년 전부터 지구온난화를 체감하고 있다”면서 “아직은 기후변화 농업의 생산성과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지만 점차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에 대비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또 기후변화로 새로운 병해충이 발생하는 만큼 병해충 발생 원인을 규명해 퇴치법을 개발할 것을 주문하고 농업인들의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투자비용 지원과 농가위험관리 보상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온도·강수량 증가···일조량은 크게 줄어 올해와 같은 이상기후가 내년에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누구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상기후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 전문가들은 굳이 올해와 같은 이상기후가 아니더라도 한반도는 이미 이상기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실제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1910년 12℃ 였던 평균기온이 2000년 13.5℃로 높아졌다. 100년 동안 평균기온 1.5℃ 오른 것으로 같은 기간 세계 평균기온 상승폭 0.74℃를 웃도는 수치다. |
연평균 기온이 상승하면 태풍, 돌풍, 설해의 피해가 늘어나고 강수량 증가로 호우피해가 뒤따르게 된다. 실제 지난 30년간 연간 강수량은 283mm나 늘었다. 하루 80mm 이상이 재해성 강우도 1980년대 연간 2.1일에서 2000년대에는 3일로 늘었다. 강수량이 늘어나면 일조량도 그만큼 부족하게 되고 병해충도 더불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하다. 일조량은 지난 35년간 378시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표> 특히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변동 폭이 심해 일조량 예측이 어려운 점이 더 큰 문제점으로 돌출되고 있다. 병해충은 중국 매미로 불리는 주홍날개 꽃매미가 2008년 충북 청주와 천안의 포도밭을 초토화 시켰다. 2001년 충북 청주에서 처음 발생한 갈색여치는 사과, 복숭아, 포도, 콩 등의 피해를 증가시키고 있다. 경남 밀양에서 처음 발생했던 벼줄무늬잎마름병의 피해지역도 북상하면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황영철 의원(한나라당 홍천·횡성)이 지난달 24일 국회 입법 조사처에 의뢰해 받은 ‘기후변화와 농업’ 보고서에서도 “농업분야의 기후변화 대응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
농업과학원 ‘기후변화생태과’ 고군분투 이런 가운데 농촌진흥청과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기후변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최근 환경부와 ‘기후변화 대응 시범도 협약’을 맺고 감귤과 한라봉 등 특산물 재배에 대한 대응방안 연구에 나서고 있다. 또 기후변화에 따른 새로운 병해충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병해충 발생 및 방제정보시스템’ 구축도 계획 중이다. 경북도는 각 작물별로 기후변화 대응 품종을 개발하고 기상재해 예측관리시스템 구축, 이산화탄소 고정화 기술 개발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남도는 ‘온난화 대응 신소득작물 개발계획’을 마련하고 최근 파파야·연무 등 아열대성 과일 시험재배에 들어갔다. 강원도는 기후변화대응연구센터를 운영하고 기후변화 대책 조례를 제정했다. 최근에는 겨울철 농가경영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난방비 제로의 ‘무가온 전통 흙집형 첨단 비닐하우스’ 모델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
농진청은 지난 2008년 10월 국립농업과학원에 기후변화생태과를 신설했다. 이곳에서는 기후변화 취약성 지도 개발, 병충해 예방 및 재해경감 기술 개발 등 위기관리 분야와 저탄소 농업기술 개발 및 온난화 적응 신품종 육성 등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회활용 분야로 나눠 연구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일조량 부족과 관련한 ‘차세대 광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LED(발광다이오드) 농업적 이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는 시범사업으로 진행되고 해당 작물이 딸기, 잎들깨, 국화로 한정돼 있어 보급이 제한적이지만 일조량 부족현상이 매년 지속될 경우 LED의 농업분야 이용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LED는 또 광환경이 좋지 않은 시설재배작물의 보광재배에 이용, 다양한 시설재배작물의 생산성과 품질향상 및 기능성 증진에도 이용할 수 있다. 기존 전조재배 때의 백열등은 수명이 짧아 자주 갈아줘야 하고 화재나 감전사고 위험이 있지만 LED조명장치는 반영구적이고 전력사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
계절·장소와 구애 없는 ‘식물공장’ 이슈화 농진청은 또 농가 현장에서 일조량 부족과 관련해 활용되고 있는 농자재에 대해서도 작물별 효과를 구명하기 위한 긴급과제를 구성해 연구 중에 있다. 특히 시설재배작물의 일장·개화 조절을 위한 농가 보급형 광(光)환경 제어시스템을 개발해 실용화하고 LED·나트륨등·수은등과 같은 인공광원에 따른 광 이용 효율을 평가해 주요 과채류 및 화훼류에 보광 기준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이상기후에 따른 동계 노지작물(유채·양파·마늘 등)의 작기별 수량과 품질 영향을 분석해 작물 피해 경감 및 안전 재배기술도 개발 중이다. 여기다 일조 부족으로 인해 피해가 큰 수박·참외·토마토·딸기 등 과채류를 대상으로 저온 및 일조 부족 대응기술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이상기후로 인한 돌발 병해충의 발생 증가와 피해 확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립농업과학원에 ‘작물보호과’를 신설했다. 작물보호과는 기존의 농업미생물과와 농업곤충과 등에 분산돼 있던 농작물 병해충에 대한 조사 및 친환경 방제기술 개발 업무를 종합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농진청의 기후변화와 관련한 최대 작품은 식물공장 기술이 꼽히고 있다. 식물공장은 통제된 시설 내에서 계절과 장소에 관계없이 자동화를 통해 작물을 계획·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농진청은 남극 세종기지에서도 신선채소를 먹을 수 있도록 컨테이너형 식물공장을 현지로 보내 주목을 받았다. |
일조량 부족 해결···‘광합성촉진제’ 눈길 농자재업계도 미미하지만 기후변화와 일조량 부족에 대응한 농자재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일조량 부족 해결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품으로는 ‘광합성촉진제’가 꼽힌다. 광합성촉진제는 작물이 광합성 작용을 촉진하는 전구체 역할을 담당하는 친환경 물질로 이뤄져 있다. 이산화티타늄(TiO2)을 이용, 햇빛이나 형광등의 자외선을 받아 산화작용을 한다. 현재 (주)대유, 키움(KEY·UM), 에코플랜츠, 지오다임, 제일환경연구소 등의 업체가 광합성촉진제를 개발 및 등록해 4종 복합비료로 판매중이다. 이들 제품은 일조량이 부족하거나 흐린 날, 안개가 많은 날 등 빛이 약한 조건에서 광합성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품질의 복합아미노산과 마그네슘 등을 첨가해 작물의 증수, 증강 및 고품질의 농산물 생산에 도움을 주고 연작, 밀식 재배장해를 예방하고 내염, 냉해에 따른 작물의 수확량 감소를 예방하는 것도 특징이다. 가격이 500ml 기준 2만원~2만5000원으로 비싸 광합성균 만을 구입해 자가 배양으로 사용하는 농가도 늘고 있지만 효과가 떨어져 전문 업체 제품의 사용이 꾸준히 늘고 있다. 현재 시장은 30억 내외에 불과하지만 올해와 같이 일조량 부족현상이 매년 되풀이된다면 광합성촉진제 시장은 수백억, 수천억 시장으로 확대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최초 저탄소 녹색비료 ‘녹색시대 25’ 동부하이텍은 경기도농업기술원과 공동으로 지난 4월 14일 20% 이상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있는 신개념 비료 ‘녹색시대 25’를 개발, 밭작물용 전용비료로 공급에 나서 주목을 받았다. 이 비료는 기능성 비효증진제가 함유돼 비료효율 개선과 함께 작물 뿌리 발육촉진 효과가 뛰어나며 빗물에 잘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개발한 기능성 비료이다. 또 비료시용량을 20∼28% 줄여 비료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도 20% 이상 낮추고 비료비용도 12∼23%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저탄소비료이다. 이 비료는 밑거름 전용이므로 추비는 작물별로 기존방법에 따라야 하며 1포대당 15kg으로 보통비료의 20kg과 혼동하지 않고 유념해 살포해야 한다. 경기도농업기술원과 동부하이텍은 화학비료와 온실가스를 50%이상 절감이 가능한 논농사용 첨단비료를 개발해 2011년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신개념 비료가 화학비료 사용량 절감을 통해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산화질소 배출량을 최대 50% 이상 절감시키는 혁신적인 비료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상기후 전 세계적인 현상···수입도 못해 기후변화 등 농업환경 변화에 맞춰 농업공학기술의 활용이 높아지고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한 GMO(유전자변형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농업공학기술은 이미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한 자동화 로봇 기술과 작물의 미세한 환경을 조절하기 위한 환경제어장치 기술로 나타나고 있다. |
전문가들은 농산물시장이 개방된 만큼 부족하면 과일과 야채도 수입하면 된다는 인식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이상기후로 인한 농작물의 작황부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올해 평균기온이 섭씨 42도까지 오르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밀 수출의 잠정적인 중단을 선언했다. 중국에서는 최악의 홍수가 발생해 쌀과 마늘의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마늘가격은 최고 11배까지 폭등했다. 적당한 일조량과 초가을의 신선한 바람으로 잘 여물어야 할 사과와 배, 복숭아 등의 과일은 물론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수박·참외·딸기와 오이·풋고추 등이 폭우와 일조량 부족으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현재와 같은 이상기후가 지속될 경우 올해 추석은 국민 모두가 기후변화에 대한 대비책 마련의 시급성을 인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