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아도 마음을 풍만하게 해주는 풍광이다. 멀리 나가있던 가족들이 모여서 추석 차례를 지내고 하얀 쌀밥과 떡, 과일들을 앞에 두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리라. 그런데 그 누렇게 변해가는, 익어가는 벼가 지금 우리 시골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풍년(豊年)인데 마음은 기근(饑饉)상태라고 한다. 쌀을 둘러싼 농민단체와 정부 간의 다양한 이견이 오랫동안 표출돼 왔다.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일정 부분을 사들여 시장으로부터 격리해도 쌀값은 여전히 오르질 않는다. 시장공급물량을 줄이면 분명 가격이 올라야하는데 그렇질 않는다. 나름대로 정부가 노력하고 있지만 효과가 기대치 이하다보니 참으로 난감하다. 의무 수입량 늘고 소비는 줄어 여기에 쌀을 지금과 같이 의무물량 수입의 형태로 수입하지 말고 관세화하자고 한다. 이론과 현실은 관세화를 지지하고 있지만 관련된 당사자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몇 년에 걸쳐, 수차의 토론과 협의를 했지만 쌀 관세화에 의한 시장개방은 아직도 과제로 남겨있다. 농림업의 연간 생산액은 약 43조원이다(2009). 이 가운데 쌀은 8.7조원으로 20.2%이다. 축산업이 16.5조원(38.4%)이고 이 가운데 한육우가 4.1조원, 돼지가 5.5조원이니까 소와 돼지를 합한 것보다 쌀 생산규모가 조금 적다. 그러나 해마다 변동하는 가격조건을 고려하면 대체로 쌀과 소와 돼지를 합한 금액이 비슷하다. 어찌되었든 여전히 쌀은 농업생산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단일품목이다. 그런데 생산량을 보면 연간 약 492만톤이지만 소비량은 계속 줄고 있다. 한사람이 연간 120kg을 소비하던 시절이 언제인데 이제는 그 반 토막으로 줄어 2020년에는 60Kg수준으로 예측된다. 생산량은 줄지 않고, 여기에 의무 수입량은 매년 느는데 소비는 줄고 있다. 쌀의 공급량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반면 소비량이 감소한다면 쌀 재고는 늘고 시장에서의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만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 하루 세끼 먹는 밥을 다섯 끼로 늘릴 수도, 고기나 야채는 먹지 말고 쌀만 먹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가 먹는 식품의 량은 거의 포화 상태다. 결론은 자명하다. 공급량을 줄이든지 아니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 수요처를 개발해서 수요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쌀 생산기반이 농업·농촌 기반 쌀을 둘러싼 안타까움과 함께, “그래도 쌀만은…” 하면서 우리 모두가 고민하는 이유는 왜일까. 쌀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여기에 우리가 전통의 식생활 습관으로 되돌아가면, 달리 말하면 식문화부흥운동을 하면 현재의 문제들을 조금은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쌀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우리 밥상에 매일 올라온다는 것, 주식이고 이것이 없다면 생명연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 이것의 부족이 나타날 경우 식량문제, 나아가 국가 자존의 문제가 대두된다는 점. 기후변화와 함께 자주 나타나는 세계 곡물파동의 중심에 밀과 옥수수가 있지만 우리는 쌀의 문제가 있다는 점. 오로지 쌀만을 자급하고 있을 뿐 다른 곡물들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쌀 생산기반 마저 무너지면 농업과 농촌의 의미가 퇴색해 버린다는 점 등이다. 쌀 생산을 적절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의 오랜 생활과 마음속에 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벼는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다. 중국에서 벼는 화(禾) 또는 곡(穀)이라 불리어졌고, 도(稻)자는 황화유역에서 재배되면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역사는 10,000년을 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3,000년 이전부터 쌀을 먹어왔다고 보고 있다. 초창기 쌀은 화전의 형태로 재배되다 점차 낮은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천수답에서 수리답으로, 직파에서 이앙으로 발전해 왔다. 오곡백과에서, 찰밥과, 약밥, 오곡밥, 그리고 각종 떡류에서 쌀이 중심이다. 마을 공동체의례인 서낭제, 산제, 당산제와 장승제 등에서 쌀은 필수 제물이다. 쌀 중심 한식···장수식품 문화 쌀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오래된, 그러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있다. 그 가운데 두레는 단연 우리 문화의 대표적인 공동체의식문화이다. 쌀농사에 필요한 물의 확보를 위한 보나 제(대표적으로 벽골제)를 구축하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집단거주와 협동, 적절한 위계질서가 필수였다. 한곳에 머물면서 가꾸고 재배해야하는 논농사는 주어진 초지를 찾아다니는 목축인들과는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아울러 목축을 위해 남을 공격하는 것보다는 서로 어울려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민주적인 마을문화는 바로 쌀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아울러 쌀을 중심으로 하는 한식문화는 장수식품 문화이다. 쌀의 한자로 미(米)를 사용하는데 사람들이 가장 소망하는 것은 미수(米壽)다. 미(米)자는 88(八十八)을 의미하기에 미수는 88세를 의미하는 말로, 오래오래 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장수를 기원하는 단어, 바로 그 쌀(米)이 중심이 되는 식문화를 우리는 갖고 있다. 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서 거기에는 우리전통과 문화가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상기하자. 그리고 쌀 중심 문화의 부흥을 꾀해보자. 그렇게 우리 국민들 모두가 노력하다보면 다음의 가을에는 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풍년행복(豊年幸福)한 미소를 띠게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