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에 대한 우려로 전국이 몸살을 하던 2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 구제역 공포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때에도, 작년까지 지속되었던 물 부족과 오염 때에도 뭔가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자성의 반향으로 위 구절을 떠올리곤 하였다. 조류독감이야기며 신종 인플루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두려움과 희망의 혼재 속에서 우리 스스로 질서의 파괴자는 아닌지 고뇌해 보기도 하였다. 인간의 발전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다. 상대적, 절대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것이 발전의 본질인지는 몰라도 과거를 되집어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시대의 윤리와 도덕, 사회의 규범조차 욕망충족을 위해 수정되거나 파기되곤 하였다. 그러는 사이 국가와 사람들의 욕망전선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배려도 사라져왔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영악하여 발전의 부정적 결과를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다. 40여년 전 로마선언에서의 “성장제로”가 필요하다는 판단은 그 증좌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분별한 욕망추구는 그에 대한 필연적인 노력을 무시하거나 무력화하여 왔다. 우리 농업에서 나타나는 최근의 재해현상들을 어찌 봐야하는지 난감하다. 자연적인 재해가 과거에 비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자연의 순리적인 변화라고 보기보다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자연 질서의 파괴라는 진단이다. 결국 인간과 국가들의 집착적인 발전에 대한 욕망과 충족의 반대 급부물로 나타나고 있는 자연재해를 목도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적어도 당분간 이러한 경향이 지체되거나 멈춰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작고 지엽적인 자연재해들을 예방하거나 극복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어렵다. 그 모습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고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기상의 이변과 그 내용들은 우리가 쉽게 해쳐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함을 준다. 기후변화로 향후 90년간 800조원의 손실을 예견하는 전문기관의 연구결과와 한반도 온난화 속도가 지구 평균의 2배라는 이야기는 약간 멀리 느껴진다. 하지만 당장 4월에 눈과 서리가 내려 배꽃이 얼었고, 금년 일조시간이 40년 만에 30~40%가 줄어서 최악의 상황이며, 냉해와 일조량 부족 등으로 하우스 농사가 망쳤다는 현장이 보도되었다. 필연적으로 농산물의 작황 부실과 그로 인한 가격상승이 예견된다면 그나마 자연재해 문제의 질곡을 느낄 수 있을까? 이러한 현상이 넓게 지속화된다면 우리의 생활 전반에는 예상할 수 없는 적지 않은 문제들이 돌발할 것이다. 이것을 예방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을지 매우 염려가 된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농업재해도 어느 정도는 무제한적인 인간의 욕망과 그것의 성취를 위한 발전의 과정에서 파생된 부정적 부산물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진정 농사의 본질과 자연과의 관계를 잘 헤아려서 어려움에 대처해야 한다. 본디 농사는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사(人事)라는 세 요소를 지침으로 삼으라고 조선시대 권농정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불변의 진리이다. 2/3는 자연에 의한 것이 농사이다. 그런데 이 자연의 도움이 삐져버린 것이다. 온도가 상승한다. 사막화가 진행된다. 물이 부족하다. 농지의 오염이 심각하다. 오로지 식육대상으로 축산업이 영유되고 있다. 자연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선 충격에 대한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는 어려움이다. 농사는 자연질서의 무너짐과 그로인한 부정적 영향을 어느 부분보다 많이, 직접적으로, 강하게 받는다. 자연질서와 욕망충족 간에 상호 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이라는 달콤함을 향유해 왔다면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그러다 보면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미미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과 떨어진 만큼 번영한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욕망을 위해 너무 많이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가 자성해 봐야할 것 같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너무 조작하는 것은 아닌가. “자연(自然)”은 그냥 놔두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자연재해라고 말하지만 기실 원인 제공자는 인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치료자도 인간이어야 한다. 핵심은 욕망을 자제하는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봄이 실종됐다”라는 어느 일간지 논설위원의 선언이 섬뜩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