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구촌은 사상 최악의 가뭄과 홍수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상기후의 주범은 바로 18년 만에 찾아온 ‘수퍼 엘니뇨’.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를 뜻하는 엘니뇨는 보통 12월경 적도 부근의 무역풍이 약해지면서 발생한다. 적도 지역의 해수면에서 발생하는 열이 지구 전체로 순환되지 못하면서 온도를 상승시키고 그로 인해 홍수와 가뭄이 심각해지는 것이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겨울철에 호주 북동부와 동남아시아에서는 가뭄이, 동태평양에 인접한 중남미에서는 폭우와 홍수가 나타난다. 따라서 해당 지역의 생태계는 교란되기 마련이고 농가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실제로 최근 발표되고 있는 각 나라별 피해현황은 심각한 수준으로 세계 곡물 시장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동남아, 심각한 가뭄 피해로 국가 경제도 휘청
전 세계 쌀의 60%를 생산하는 인도·파키스탄·태국·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은 엘니뇨로 인한 가뭄을 겪으면서 쌀 생산에 직격탄을 맞았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들 국가의 쌀 생산량이 크게 하락해 올해 비축량이 1900만t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수량은 최고치였던 2013년 비축량(4300만t)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또 지난 9일 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보고서를 보면 엘니뇨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이 2015∼2016년 입는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100억 달러에 이르고 있으며, 엘리뇨 현상이 지속되면 그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태국 쌀가격 8개월만에 최고치로 올라
동남아 각 나라별 가뭄 피해를 좀 더 들여다보면 동남아의 대표적인 쌀 산지인 태국의 쌀 비축량은 전년보다 35.8% 감소한 1200만t을 나타냈다. 지난달 태국 내 쌀 가격은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베트남에서는 메콩 강 하류 수위가 1926년 이후 9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메콩 강 유수량이 평균치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베트남에서는 약 18만㏊의 농지가 타격을 입었고 올해 1분기 농업 생산량이 전년도보다 1.23% 줄어들었다. 이 영향으로 베트남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도의 6.7%보다 낮은 5.6%를 기록했다고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분석했다.
말레이시아는 주요 수출품목인 팜유의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올 3월 팜유 생산량이 122만t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7% 감소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올해 쌀 수출량보다 수입량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동남아와 호주 지역의 사탕수수 재배도 어려워지면서 3월 설탕 가격은 1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남미와 아프리카, 콩과 옥수수 재배에 심각한 피해
반면 아르헨티나는 물난리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곳곳에서 홍수가 나면서 많은 가축이 익사하고 콩 재배지역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콩 생산지인 부에노스아이레스·산타페 지역에 지난 4월 초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900만t에 이르는 대두가 유실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올해 생산량이 15~16%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톰슨로이터는 미국 민간조사기관인 인포르마 이코노믹스의 분석을 인용해 아르헨티나 콩 생산량 전망치를 5950만t에서 5500만t으로 하향 조정했다고 전했다. 세계 3위의 콩 수출국인 아르헨티나의 농산 당국은 홍수로 13억 달러(약 1조 4826억원)의 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했다.
아프리카의 상황도 심각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흰 옥수수 생산량이 급감했다. 급기야는 지난달 15일 미국에서 흰 옥수수 1330t을 수입했다. 아프리카에서 옥수수 최대 산지인 남아공이 미국으로부터 흰 옥수수를 수입한 것은 1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엘니뇨 다음은 더 무서운 라니냐?!
더 큰 문제는 엘니뇨의 정반대인 ‘라니냐(여자 아이)’다. 적도 부근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낮아져 동남아시아와 인도·호주에 홍수를, 북미와 남미엔 가뭄을 유발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엘리뇨가 라니냐로 변하면서 농작물 생산에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고 올해 북반구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엘니뇨에 이어 라니냐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식품 원자재 가격이 한층 출렁일 전망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이미 곡물·오일 시드 원자재 가격은 1년 전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미국 남부에는 강수량이 적어지면서 옥수수 생산량이 타격을 받고, 아르헨티나에는 가뭄이 들어 콩 작황이 나빠진다. 2010년에 라니냐가 닥쳤을 때도 1년 뒤 밀 가격은 21%, 콩 가격은 39%가 올랐으며 설탕 가격은 무려 67% 폭등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
전세계 농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있는 엘니뇨, 라니냐는 우리나라 농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많은 전문가들은 엘리뇨, 라니냐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연구과제가 진행중이라며 제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온도의 상승 등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있겠지만 농작물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적다고 보고 있다.
엘리뇨, 라니냐는 적도 동태평양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우리나라까지는 거리가 상당하다. 엘니뇨, 라니냐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적도태평양의 강수량인데 엘리뇨 때에는 날짜 변경선 근처에 강수량이 늘어나고 서태평양 지역에는 강수량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은 상관관계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엘니뇨가 절정을 이루는 겨울철에 우리나라 지역은 따뜻한 경향이 있고, 라니냐 때에는 추워지는 경향이 있다. 엘니뇨 다음 여름철에 우리나라의 강수량이 많아지는 경향이 알려져 있지만 모든 엘니뇨때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간접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엘니뇨가 절정이던 지난해 겨울 우리나라는 이상고온이 진행되었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필리핀 해 부근에 형성된 고기압성 흐름으로 인해 따뜻한 남풍계열의 바람이 우리나라로 유입되어 평년보다 따뜻했던 것이다. 특히 12월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 대륙고기압의 발달이 약하여 우리나라로의 한기 유입이 약했었다. 이로 인해 눈이나 얼음과 관련된 겨울 축제들이 무더기로 취소되고 스키장들이 파행운영을 거듭해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입힌 바 있다.
이상기후의 일상화로 농업피해 심각
라니뇨와 엘니뇨는 모두 지구온난화로 인한 현상으로 이상기후를 동반하고 있다. 위에 말한 대가뭄과 대홍수가 아니더라도 지역적인 이상기후가 빈번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0년대 이후 이상기후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5월 이상고온 현상 발생(1973년 이래 우리나라 5월기온 최고 1위 기록) ▲6월 장마기간 동안 적은 강우량(평년대비 73%에 불과) ▲7월말~8월 초순의 기록적인 폭염 ▲11월의 이상 장마현상 및 많은 강우량(비온날이 14.9) ▲연 강수량의 최저(역대 최저 3위 기록) 등 많은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장마기간 동안 전국 평균 강수량은 240mm로 평년 356mm의 67%에 불과했으며, 5월의 이상고온 현상과 5~8월의 기록적인 가뭄은 농작물의 생육에 큰 피해를 끼쳤다. 또한 11월에는 남서쪽에서 다가온 저기압의 영향으로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많아 전국 강수일수가 14.9일로 1973년 이래 최대기록을 나타냈으며, 이로 인해 수확기 또는 수확기 이후 농작물 관리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예측불가능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이 같은 이상기후는 사전 예측이 어렵고, 대비마저 쉽지 않아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돌발적인 이상기후, 농작물에 직격탄
위같이 특정기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이상기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적으로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이상기후이다. 지역적인 집중호우, 우박, 강풍 등은 소규모의 특정지역에 단시간에 강력한 규모로 나타나 농작물을 초토화시키곤 한다.
2000년대 이후 지역적인 여름철 집중호우가 일반화되고 있으며 심할 경우 1년 강수량의 30%에 해당하는 300mm 이상이 하루에 내려 인근지역의 농작물은 물론 인명과 재산에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지난 2011년 여름에는 섬진강 유역에 시간당 250mm의 기록적인 물폭탄이 내렸으며 지난해 여름에는 제주에 단 이틀새 1100mm의 물폭탄이 쏟아져 많은 피해를 남긴 바 있다.
강풍 역시 최근들어 나타나는 국지성 돌발적 이상기후이다. 지난 4월 16~17일 양일간 전국에 갑자기 몰아친 강풍으로 인해 비닐하우스 피해가 발생한 농가만 810곳 피해면적은 208ha에 달했으며, 지난 5월 4일 강원도 지역에는 초속 45m의 태풍급 강풍이 몰아쳐 농작물은 물론 지역경제에 큰 피해를 끼쳤다.
자연의지 산업 농업, 과학과 정책으로 대비해야
농업은 분명 자연에 의존해야 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만을 탓할 수만은 없다. 지구 온난화는 어쩔 수 없는 현재의 문제이며, 이에 따른 우리나라의 이상기후 현상은 앞으로 더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는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우고 있다. 농업인프라를 생산성 위주에서 ‘안전과 안정’의 관점에서 보완하고 있으며, 농업재해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조기경보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더불어 사후 대책으로 과학적인 피해보상을 위한 방법과 제도 또한 마련하고 있다.
정부와 더불어 농업인들의 적극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기상정보와 재난정보를 항상 가까이 하며, 이상기후 시 발생할 수 있는 농경지의 위험요소도 스스로 정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에서 시행 중인 여러가지 농산물 재해보험 등에 미리 가입하여 불의의 재난에 대비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비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