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최저가입찰, 농기계 유통혼란 불렀다

2015.07.02 10:27:58

[농기계은행사업 최저가입찰제도]산학관연 T/F팀, 제도개선·외국산 과대점유 해법 기대

농기계를 구입하는 농업인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농협중앙회 농기계사업의 최저가입찰제도가 농기계 가격거품 형성, 일본산 농기계의 급격한 국내시장 잠식 등 큰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의견이 산학연계에서 제기되면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연 1조원 가량의 국내 농기계시장에서 금액기준 18% 정도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은 최저가입찰로 인해 업체에게 과도한 가격할인의 부담을 안겼으며, 이는 다시 기업의 가격인상과 가격거품 발생이라는 부메랑으로 인한 유통혼란을 유발했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토종 농기계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가격인상, 대리점 경영 악화가 가속화되면서 일본산 농기계의 급속한 시장 확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농기계 품목에서 일본산의 약진이 진행되면서 국내시장의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를 경고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 출혈에도 최저가입찰 응해야 하는 모순 
농협은 농기계은행사업의 최저가입찰에 대해, 저가로 구매해서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인에게 실익을 주며 농기계 가격인상의 견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농기계 업계에서 최저가입찰 부분의 수익적자를 메우기 위해 다양한 시장대응 행위가 등장했으며 업체의 잦은 모델변경과 가격인상은 대표적인 대응 행태라 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는 올해 100마력 이하 트랙터 본체에 대해 경쟁입찰을 실시했다. 저상형(60hp미만), 중소형(70hp미만), 대형(100hp미만)으로 구분해 입찰했으며, 전체 물량의 절반은 최저가격을 제시한 업체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입찰 참여업체에게 시장점유율·계통점유율 등을 감안해 낙찰업체와 같은 최저가로 배정했다.


올해는 트랙터 3개형의 입찰물량이 모두 LS엠트론에 낙찰됐으며, 배정물량은 전체 입찰 참여업체에게 배정했으나 동양물산은 배정을 포기했다. 그 결과 농협은 트랙터 경쟁입찰을 통해 LS엠트론 2105대(81%), 대동공업 381대(15%), 국제종합기계 94대(4%)를 최저가로 구매했다.


100마력 이상의 트랙터 본체와 콤바인, 승용이앙기, 부속작업기, 기타 소형농기계는 예정가격 이내 업체와 수의계약을 통해 구매했다.
농협의 농기계은행사업용 농기계 가격은 지역조합 자체사업 농기계 가격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기계은행사업용을 중심으로 한 농협의 농기계 구매 가격은 공개되지 않지만 권장소비자가격과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기종에 따라 50%이하라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만큼 대리점 공급가격과 차별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농기계 업체가 최저가 계약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협 판매기종임을 내세운 이미지 제고 효과와 고정비 회수 등의 목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대답이다.


불필요한 모델변경과 가격인상 등 농업인에게 피해
농기계시장의 18%에 그치는 농협 농기계사업이 과연 전체 시장을 흔들 수 있겠는가? 최저가입찰제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농협의 농기계사업 관계자들은 의문을 내비친다. 농업인이 가능하면 싼값에 농기자재를 구입할 수 있도록 가격 견제를 하는 것이 농협의 역할이므로 최저가입찰은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농협 농기계사업이 최저가입찰로 업체에게 과도한 가격할인의 부담을 안겼으며, 업체는 이로 인한 수익적자를 메우기 위해 불필요한 모델변경과 가격인상 등의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일고 있다.


신승엽 농업과학원 연구관은 지난 5월 21일 ‘농식품 및 농기계 수출 활성화 심포지엄’에서 농협의 최저가입찰이 소비자와 제조업체, 사후봉사업소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신 연구관은 “농협의 경쟁입찰에 의한 농기계 공급은 사용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농기계를 공급한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그러나 농기계의 가격은 물론 부품 가격, 공임 인상 등을 초래해 결국 적지 않은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제조업체 및 사후봉사업소의 경영악화가 순환적으로 초래되어 국산농기계의 판매 감소가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농협의 트랙터 국내 점유율은 2012년 28.7%, 2013년 31.0%를 나타냈으며 2012∼2014년 가격인상률은 7.9%, 6.1%, 6.2%를 차례로 나타내 전체 농기계의 가격인상률보다도 현저히 높은 수치를 보였다. [도표 1] [도표 2]



시장에서 농기계 가격 혼란, 판매감소 자초
현 농기계시장은 ‘가격’ 문제에 있어 혼란 상태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가격 자체에 대한 불신이 전반적으로 심각한 상태다. 최근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은 올해부터 농업기계 가격집에 권장소비자가를 표기하지 않기로 했다가 다시 가격을 넣기로 번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말이 ‘권장소비자가격’이지 현재 국내 시장에서 권장가로 농기계가 판매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업계에서는 권장가의 70∼80% 정도를 최종소비자가격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기계 가격혼란이 농기계업계의 유통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산 트랙터를 통해 현재 상황을 추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60∼70마력급 트랙터의 권장소비자를 5000만원이라 했을 때 농협의 인수가격을 60%수준으로 본다면 농협의 농기계 구매원가는 약3000만원이 된다. 이 트랙터의 농업인 공급가격을 권장가의 80%인 4000만원이라 봤을 때 농협의 마진은 1000만원(판매가-구매원가)이며 관련비용과 수익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제품을 농기계 대리점에서 판매하는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우선 대리점에서는 신제품 판매에 앞서 농기계를 구입할 농업인이 보유하고 있는 중고농기계의 예상판매가부터 따져봐야 한다. 농기계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700만원에 인수한다고 가정하자. 여기에 트랙터 권장가의 20∼30% 할인을 적용하게 된다. 대리점이 5000만원 권장가의 트랙터를 팔기 위해서는 중고예상판매가 700만원과 20% 가격할인시 1000만원을 합한 1700만원을 제하고 들어가야 한다. 또 대리점의 총마진을 일반적으로 권장가의 약25%로 가정하면 실질적인 판매마진은 250만원, 총마진의 30%라고 가정해도 500만원에 그치게 된다.


최종소비자인 농업인의 트랙터 구매가격이 4000만원으로 동일하다 할 경우 농협의 마진은 대당 1000만원인 반면 대리점의 마진은 250만원으로 1/4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리점은 제품 대금을 사전에 지불하고 판매 후에 회수해야 하므로 금융 이자 부담까지 안아야 한다. 대리점의 수익창출이 갈수록 심각하게 어려워진 요인이다. 결국 농기계대리점의 부도와 자살 파동의 배경이 짐작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농협이 농기계사업용으로 구입한 농기계의 재고분은 햇수가 지나도 최초 구입원가대로 판매하는데 이때 동일기종·규격과 가격 차이가 발생해 또 다른 가격혼란을 빚게 된다. 농협의 농기계 재고분은 연간 500∼1700대에 이른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일본산 농기계의 급속한 확장, 토종기계 사멸 위기 
농기계 기업의 모델변경이 가격인상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 또한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로 인해 가격과 품질에 거품이 발생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기업과 업계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조합의 공급 기종 안내서를 보면 A기업의 트랙터의 경우 2015년 지역조합 공급모델 29종 중 14종이 2012년 기종, 나머지 15개가 신규모델이었다. 이앙기는 2012년 기종이 2종, 나머지 10개가 신규모델이었으며 콤바인도 2012년 기종이 3종이고 나머지 20개가 신규모델일 정도로 모델변경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농기계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원가상승 등 다양할 것이나 현 유통구조를 보면 농협이 최저가, 즉 최고로 할인율이 높은 농기계를 선택하는 최저가입찰제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고로 할인율이 높은 농기계가 선택된다는 인식이 있으므로 농기계기업들이 일단 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이것이 가격거품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엔저에도 국내시장의 일본산 농기계의 가격 인상폭은 큰 편이며 할인판매로 시장을 장악해 수익 증대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대동공업 트랙터 LX430의 경우 2010년 가격이 약1670만원이었는데 2015년 2180만원으로 올랐으며 파생기종의 경우 2630만원까지 인상했다. 반면 구보다의 L430M은 같은 기간 1616만원에서 2887만원으로 인상해 가격차이가 9.8%에 불과했으며 20% 할인시 유사기종의 한국농기계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융자 또한 1947만원으로 동일하다.


일본산은 판매 상승으로 국내 시장 몫을 확장하고 있으며 이는 곧 국내 기업의 경영축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공급대수 기준 일본산은 2013년 트랙터의 13%, 승용이앙기의 42%, 콤바인의 28% 시장을 점유하고 있으며 매출액 기준시 약 20%를 점유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일본산 농기계 시장의 급속한 확장은 국내 기업의 시장 몫을 축소시키고 경영수익을 악화시켜 이대로 가면 국내 토종기업들이 사멸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론까지 대두되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산 융자지원도 재검토할 문제
현재 국내 농기계 시장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농협이 농기계사업에서 최저가입찰제를 강화하면서 기업의 경영애로와 농기계 가격인상, 모델 단기화 등의 대응이 나왔다. 기업의 수익성 하락은 장기투자의 기피로 이어지고 있으며 대리점의 경영악화는 대리점에게도 문제이지만 기업들에게도 큰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산 농기계 시장의 급속한 확장은 국내 기업의 시장 몫을 축소시키고 경영수익을 악화시켜 이대로 가면 국내 토종기업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정부에서는 농기계 수출확대를 위한 한국농기계글로벌센터 건립과 연구 지원에 나서는 등 국내 농기계 산업기반 강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기계업계에서도 수출확대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혼란이 반복·확산된다면 국내 농기계 유통과 사용, 산업에 더욱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일본 농기계의 국내 시장 장악은 더욱 심각한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산과 수입산에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는 국내 융자지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이앙기의 경우 이미 일본산이 국내 시장을 장악했다는 자조적인 분석이다. 일부 국내 업체가 대리점을 독려하며 시장을 지키고 있지만 올해 이미 일본산의 점유율이 50%에 달했다는 추정까지 나오는 상태다. 유사규격의 이앙기의 경우 일본산이 한국산보다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일례로 “대당 가격이 수입산 3000만원, 국내산 2400만원으로 대당 가격이 400∼500만원 정도라면 손쉽게 일본산으로 교체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취재 중에 만난 한 대리점 대표의 이야기다.


콤바인의 경우 일본산과 국내산 간의 가격차이가 어느 정도 되다보니 일본산의 시장확대가 빠르지는 않지만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판매현장의 목소리다. 특히 최근 구보다의 중국산 5조가 들어오면서 한국산 제품과 가격차이를 훨씬 좁혀 국내 시장을 급속하게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예측이 나오고 있다.
트랙터는 수입산과의 가격차이가 어느 정도 있어 왔으나 국내산 트랙터 가격의 인상과 중국산 일본 제품이 시장에 도입되면서 그 차이가 미미해진 상황이다.


일본산의 국내 시장 안착을 도운 것은 다름 아닌 국내 기업들이라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수년동안 국내 토종 농기계기업들이 일본 제품을 수입·판매했으며 이후 독립법인으로 들어온 일본 농기계업체가 국내 시장에 쉽게 자리잡는 빌미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에 대한 업계의 자성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내 시장 상황이 이런 지경인데 외국산에도 국내 융자지원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지자체에서 농기계 구입시 농업인 부담 이자의 일부(1%)를 보조지원하는 경우에도 일본산을 똑같이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기계 가격 왜곡 문제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 국내 농기계업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격의 왜곡을 바로잡으면서 농업인과 농기계업계, 농협이 공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책적으로도 외국산 농기계 점유의 적정선을 염두에 두고, 국내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유도하는 일종의 보호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다.


지난달 25일 농협중앙회는 ‘농기계산업 및 농협 공급제도 발전을 위한 협의회’를 열고 농기계 관련 산학관연의 전문가 20여명이 머리를 맞댔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과 농기계업체 관계자들까지 참여해 농협 농기계사업의 최저가입찰제 대안을 모색하고 업계 발전방안을 논의했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서 농협과 업계가 합의점을 찾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대안을 찾기 위한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하자는 점에는 동의했다. 최저가입찰제를 비롯해 농협의 농기계 공급제도와 농기계시장의 유통혼란 문제, 외국산 농기계의 시장 과대 점유의 대안을 조속히 마련하기 위해 농식품부와 연구기관, 농협, 학계, 업계, 농업인이 참여하는 T/F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농기계 시장의 가격거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계의 노력도 절실한 상황이다. 큰 틀에서는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구조조정과 연구개발 투자, 서비스 개선 등에 나서야 한다. 현 시장의 가격혼란과 대리점의 경영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업계가 먼저 원가공개를 하고 적정 권장소비자가를 다시 책정하는 전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농협도 최저가입찰제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통상적인 대량 구입에 따른 인센티브를 반영하는 가격 등 다른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 역시 농기계산업의 중장기적인 육성방안을 마련해야 할 중차대한 책임이 있다. 농기계 수출 20억달러 달성과 농기계산업 발전을 위해 세부적인 계획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융자와 보조에서 외국산 농기계를 국내산과 똑같이 지원하는 제도도 가능한 선에서 고쳐야 한다.


농기계 시장에서 최소한 70%는 국내산이 차지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야야 한다는 필연성이 대두되고 있다. 농기자재산업의 자주성 확보는 농업 전체의 자주성과 연결되는 것이므로 산학관연이 뜻과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향후 활동이 기대되는 T/F팀에서는 현 농기계 유통 문제의 개선방안을 찾고 농기계산업의 내실이 있는 발전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은원 hiwon@newsam.co.kr / 이성복 sblee@newsam.co.kr



이은원 hiwon@news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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