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 가격혼란으로 기업·대리점·시장 멍든다

2015.07.16 14:00:50

거품가격· 극심한 모델변경, 일본산 시장 잠식

농협중앙회 농기계사업의 최저가입찰제가 업체에게 과도한 가격할인의 부담을 안김으로서 기업의 농기계 가격인상과 불필요한 모델변경 등의 행태가 나타나는 결과를 빚었으며, 가격경쟁력을 잃은 토종 농기계 시장을 일본산 농기계가 잠식하는 현실이 국내 시장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업계의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에 농협 최저가입찰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요구가 높아졌으며 지난달 25일 농협중앙회가 마련한 농기계산업 및 농협 공급제도 발전을 위한 협의회에서는 산학관연의 전문가와 농업인이 참여하는 T/F팀을 구성해 농협의 농기계 공급제도 개선과 유통혼란, 외국산 농기계의 과대 점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합의가 나왔다.

 

농기계은행사업용 최저가입찰로 시장의 이중가격 형성

농기계 유통과정에 농협이 미치는 영향력은 전체 취급물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최저가입찰 등 농기계 매취 과정의 특성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 때문이다. 국내 농기계 시장에서 농협이 차지하는 비중은 27.4% 정도이며 세분하면 농기계은행사업용이 11.7%, 지역조합의 계통사업과 자체사업이 15.7%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농기계대리점의 비중은 72.6%를 나타냈다. [도표 1]



이처럼 양적으로는 농기계시장에서 농기계대리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농협은 최대의 단일 구매자로서 영향력이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올해만 봐도 농협중앙회는 100마력이하 트랙터 2580대를 경쟁입찰로 구매계약을 체결했으며, 100마력이상 트랙터 29개모델, 콤바인 28개모델, 이앙기 32개모델, 부속작업기 191개모델 등을 수의계약을 통해 구매하기로 했다.

농기계은행사업용을 중심으로 한 농협의 농기계 구매 가격은 공개되지 않지만 권장소비자가격과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기종에 따라 50%이하라는 것이 기정사실이 된 만큼 대리점 공급가격과 차별화되고 있다.

이와 같이 농협이 최저가입찰 등을 통해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농기계를 구매하면서 시장에서의 이중가격 형성, 상대적으로 업체로부터 비싼 가격에 농기계를 인수하는 대리점과의 마찰, 낙찰회사와 낙찰받지 못한 회사 간의 갈등 등도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농기계 품질과 원가구조 도외시, 농업인의 선택권 실종

그렇다면 농협 농기계사업의 최저가입찰제도가 실제 농업인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일까? 농협은 최종소비자인 농업인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100마력이하 트랙터에 대해 최저가 경쟁입찰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저가입찰제도가 가져온 유통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아닌 농업인이라는 것이 관련 산학연계의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입찰제도는 매매나 도급계약 과정에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돼 온 제도다. 최저가입찰제의 경우 예산을 절감하고 낮은 가격에 필요한 물재를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건과 같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도 상당수 있다.

농협 농기계 입찰의 경우는 올해 저상형(60hp미만), 중소형(70hp미만), 대형(100hp미만)으로 구분한 다음 입찰에 참여하는 각 회사들이 해당 그룹 내 트랙터의 총가격을 총마력으로 나눈 마력당 가격을 농협에 제출했다. 농협은 각사의 이 자료를 그룹별로 다시 평균해 마력당 가격을 작성, 이를 기준가격으로 제시하고 회사별 낙찰률을 요구했다.

낙찰률에 의해 제시된 각 회사의 그룹별 마력당 가격이 농협이 갖고 있는 예정가격 이하이면서 최저가를 적어낸 회사 제품을 최종 낙찰가로 결정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농협의 최저가입찰제의 문제점은 회사별 원가가 도외시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각 회사의 원가구조나 품질 등에 관계없이 일괄적인 기준으로 최저가입찰을 하는 것이 현 제도의 맹점 중 하나다. “회사별 원가를 인정하고 회사별, 기종별, 규격별 공급가격을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 농업인들의 선택권도 보장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이 관계자의 이야기다.

현 제도가 원가마저 무시한 일괄적인 동일 기준의 최저가입찰을 함으로써, 농기계회사들이 품질이 떨어지거나 선호도가 낮은 농기계 위주로 공급을 한다는 풍문까지 나올 정도로 농업인의 신뢰도도 낮아졌다는 것이다.

 

대리점도 농협가격, 유통마진은 큰 격차

본지는 지난 71일자 테마기획 농협 최저가입찰, 농기계 유통혼란 불렀다에서 현 농기계시장이 가격문제에 있어 혼란 상태에 빠져있는 모습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권장소비자가격이 있긴 하지만 이 가격으로 농기계가 판매되는 경우도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로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도표 3]은 규격별 농협구매가와 농기계가격집에 실린 권장가격을 비교한 것이며 [도표 4]는 지역농협의 농기계할인율을 제시한 것이다. 농기계은행사용용을 중심으로 한 농협의 농기계 구매가격은 공개되고 있지 않지만 기종에 따라 50%이하라는 말이 공공연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농협의 최저가입찰제 구매방식으로 인한 가격혼란의 문제를 유통단계별로 가격과 마진율을 추정해 도표화하면 현 농기계시장의 가격혼란과 농협과 대리점 간의 유통마진의 차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적어도 권장가보다 20%이상 낮은 가격으로 농협 농기계가 공급되고 있으며 많게는 28%에 이른다. 이러한 가격에 의한 공급은 당연히 농업인들의 구매가격을 낮게 만들고, 대리점에 농협 할인 정도의 가격할인을 요구하게 한다. 한편 농기계대점의 판매 기본 수수료율은 [도표 6]과 같으며 성과급을 지급한다라도 25% 내외의 수수료로는 대리점 경영이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가격할인 입찰이 시장의 가격거품 불렀다

농협의 최저가입찰제가 시장의 이중가격을 만들어 대리점의 경영을 발목 잡았다면 업체에게는 과도한 가격할인의 부담을 안겼다. 농기계기업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농기계 모델의 지나친 변경과 가격인상을 함으로써 가격거품과 품질거품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는 결국 전체 업계에게 경쟁력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으며 일본산 농기계의 과도한 시장점유를 불러왔다.

[도표 7]은 지난 5년 동안 국내 토종기업 제품과 일본 기업제품 모델수를 정리한 것이다.

트랙터의 경우 토종기업과 일본기업 2010년 모델 수는 각각 69, 27개였는데 5년 후인 현재는 각각 127, 24개로 변했다. 토종기업이 회사당 58개가 증가한 반면 일본산은 오히려 3개가 줄어들었다. 이앙기의 경우도 토종기업이 같은 기간 3개가 증가했는데 일본산은 반대로 3개가 줄었다. 콤바인 역시 토종기업이 5년 동안 회사당 8개가 증가했는데 일본산은 5개의 증가에 그쳤다.[도표 8]




국내 토종기업의 모델 증가는 극단적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이며 거의 모두 가격상승을 동반하고 있다. 일본기업이 모델 수 확대를 하지 않고 생산비 절감과 효율적 관리, 사후관리의 용이성, 중고농기계 재활용 촉진 등을 도모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국내기업 경우 5년 전에 생산되던 모델 가운데 지금 생산되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5년 전 생산되던 트랙터를 보면 당시 총 58개에서 8개만 생산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5년 후 트랙터 모델의 생존율이 14%에 불과하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또한 현존하는 8개 트랙터 모델의 가격 상승률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최저 22%에서 최고 44%까지 가격이 인상됐다. 기본모델에 파생상품 간 가격차이를 고려할 경우 가격인상률은 거의 모든 모델에서 40%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최저가입찰 부분의 수익적자를 메우기 위한 시장대응 행위가 가격거품과 모델변경으로 나타났다는 업계의 인식이 두드러진다. 또한 농협 최저가입찰제가 가격할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응이 가격상승의 한 요인이 됐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농기계 유통혼란이 일본기업에겐 기회됐다.

반면 일본산 농기계는 엔저에도 소규모 인상 전략을 폈고 할인판매로 시장을 장악해가는 모습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시장이 잠식된 이앙기의 경우 한·일 가격수준과 인상률 등을 보면 [도표 9]와 같다.

공급된 6조승용기 모델의 평균치 가격을 보면 2010년 한국산이 일본산 구보다에 비해 15%정도 저렴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제품의 가격상승률이 워낙 높아 이제는 구보다 제품과 2%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품질경쟁력을 얻기 전에 가격경쟁력이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일본산 주요 농기계는 2013년 공급대수 기준 트랙터 13%, 승용이앙기 42%, 콤바인 28%의 시장을 점유했고 매출액 기준 약 20%를 점유했다는 통계가 나와 있으며, 시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와 같이 농기계시장의 유통혼란과 가격 왜곡은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심각한 수준까지 와있다. 농협 최저가입찰로 인한 유통질서 혼란은 농협수익 증대와 함께 국내 기업의 경영애로를 불러왔으며 가격거품과 모델 단기화라는 대응을 초래했다. 기업의 수익성 하락과 함께 장기투자 기피가 현실화 됐으며 대리점 경영 악화가 가속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일본산 농기계의 급속한 확장이 뚜렷하게 나타나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농기계시장이 사멸하게 된다는 위기감마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농협 농기계사업의 최저가입찰제에 대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관련업계와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기계시장의 유통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산학관연과 농업인이 참여하는 T/F팀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커지는 분위기다.

농협 최저가입찰제도의 개선과 함께 가격거품에 대한 업계의 뼈저린 자성과 변화, 기업의 구조조정과 연구개발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대책, 일본산 농기계의 과도한 시장점유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대책과 농기계산업의 중장기 산업 육성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은원 hiwon@newsam.co.kr




이은원 hiwon@news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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