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업자 노출량 초과, 11개 농약 라벨서 적용작물 삭제

2013.03.01 08:44:38

적합성 논란 속 업계 ‘막대한 손실’ 파급

농약 등록 신생 평가 항목인 ‘농작업자 노출량’ 시험 결과에 따라 2010년 재등록 평가 대상 농약 11개 제품<표 1>이 라벨에서 적용작물이 삭제 조치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각 농약 제조회사 등록담당자들의 역할 부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1월 30일 수원 농촌진흥청에서 개최된 ‘제41차 농약안전성심의위원회’에서 심의위원들은 안건으로 올라온 14개의 농약 품목 중 11개가 ‘농작업자 노출량’ 시험 결과, 노출허용량을 초과함에 따라 시험 작물(적용 작물)을 제품 라벨에서 삭제토록 결정했다.

업계는 11개 품목이 삭제 조치된 것이 ‘유럽 모델을 그대로 적용한 시험 기준 때문’이라며 구제해 줄 것을 농진청에 건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요청은 법 개정 이전의 미온적 태도와 사후약방문격 대응이라는 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농작업자 노출량’ 시험은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개인보호장비 없이 맨몸으로 농약을 살포할 경우 노출된 농약이 안전한지 시뮬레이션 모델을 이용해 평가한다. 1단계에서 노출허용량보다 결과가 작게 나온 농약은 등록이 된다. 1단계에서 노출량이 많은 농약은 2단계로 넘어간다.

2단계는 작물의 생육단계, 살포시기 등 실제 사용조건, 개인보호장비 착용에 의한 경감요인 등을 시뮬레이션 모델에 적용해 평가하는 것으로 여기서 문제가 없는 경우는 등록, 노출허용량보다 노출이 많이 되는 농약은 3단계에서 다시 평가한다.

판정 이후 건의···사후약방문격 태도 논란

3단계 시험은 직접 야외 포장에 나와 시험에 의해 노출량을 측정하는 단계로 결과가 노출허용량보다 높을 경우 등록이 보류된다. 농약 제조업계는 통상 시뮬레이션 결과보다 실증 포장시험이 10분의 1 수준으로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해 이 같은 제도에 동의했다는 후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3단계 실증시험 기준이다. 과수를 대상으로 SS기를 사용해 시험을 실시하는데 기준이 ‘하루 농약살포 면적 4ha, 살포시간 6시간’을 적용하고 있다.

농약 제조업계는 “우리나라에서 4ha는 현실적으로 하루에 살포할 수 있는 면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농약 제조업계는 4ha라는 면적이 ‘너무 넓다’는 주장을 계속 제기해 왔다.

농진청도 이 같은 시험 방법이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을 수 있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실증 시험을 실시했다.

정미혜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자재평가과 박사는 지난해 9월 25~26일 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된 ‘한국의 바람직한 농작업자 노출량 평가를 위한 간담회’를 통해 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과수 농업인 중 4ha 이상을 소유한 농가는 5% 미만이다. 또 500L용 SS기로 1, 2단 기어· 1.2mm 노즐을 사용해 농약을 과수원에 살포하면 0.1ha에 한번 살포하는데 20분이 소요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4ha를 살포하기 위해서는 12시간이 소요된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 수치는 물받는 시간, 이동 시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순수하게 살포하는 시간만 고려한 최소 수치이다. 즉 실제로는 4ha에 농약을 살포하는데 12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것이다.

‘4ha 시험 너무 많다’ 법 개정 전 건의 가능해

농약제조회사들은 농약 살포를 위해서는 하루 2시간 이상 작업하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현실적으로는 절대 4ha는 하루에 살포할 수 없는 면적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해 농진청의 연구 결과를 통해 4ha는 분명히 살포 불가능하다고 판명 났으나 이 같은 기준은 실증 시험 이전에도 알아보기 불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이 농약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농약 등록 담당자들은 “실증 시험 결과를 현재 기준에 반영해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이 또한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살포 가능 면적이 1ha인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4ha 기준에 따른 노출량을 1ha로 변경해도 평가 대상 제품들 11개가 2개 품목을 제외하고는 노출허용량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시험 설계시 살포물량, 살포시기, 개인보호장비 등은 시험자가 선택할 수 있는 항목으로 법 해석을 어떻게 유리하게 하느냐에 따라 시험을 유리한 조건으로 수행할 수 있다.

만약 등록 시험 담당자들이 이를 고려해 유리하게 시험했는데도 불구하고 노출허용량을 초과했다는 시험 결과를 번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만약 유리한 조건으로 시험을 수행하지 못했다면 시험 담당자의 불찰로 노출허용량을 초과한 것이 되므로 이 또한 정부를 탓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유럽 모델을 적용할 당시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유럽 사람들의 체격은 우리나라보다 월등하다. 따라서 노출량 산정 기준을 우리나라에 맞춰 설정하면 노출량이 더 적었을 것으로 판단해 이 같은 사항은 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요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험 도입으로 업계와 정부가 모두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법 개정 당시 상황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농작업자 노출량’ 시험은 2009년 7월 개정된 ‘농약등록 기준’에 포함돼 시행됐다. 그러나 이 시험을 개정 법률에 포함하기 위한 논의는 2007년 말 ‘국감’ 이후부터다. 국감에서는 해마다 ‘농부증’을 비롯한 농작업자의 안전성 확보라는 주제가 단골로 지적되는 메뉴였다.

2007년에도 이계진(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농약의 종류는 1970년 140개에서 지금은 1200여개 정도로 37년만에 80배가 늘어났다”며 “따라서 농약에 의한 사망이 연간 3500명에 달하고 그중 중독 및 사고에 의한 사망이 100여건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이와 함께 “농림부는 농약이 오히려 니코틴, 카페인 등의 독성보다 낮은 것으로 홍보한다”며 “이는 농약사용 농산물의 안전성과 농약의 유용성을 강조하려는 것인데 여기에는 농약을 직접 사용하고 있는 농민들의 건강·안전성에 대한 배려가 빠진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처럼 국감 이후 농약의 안전성 강화 움직임이 있었고 2008년 6월부터 농진청은 본격적으로 ‘농작업자 노출 시험’ 개정안 만들기에 들어갔다.

이렇게 2009년 7월 개정법이 시행될 때까지 1년의 시간이 있었으나 농약 제조업계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이 농진청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9년 4월 28일 ‘농약 등록 기준’안 행정예고를 통해 그 해 5월 17일까지 의견서를 제출토록 했으나 한 건도 접수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의견 제출 서면으로 해야 효력 발생

농약 제조업계는 “2009년 당시 농진청 농약 평가 관련 담당자들이 농업기술실용화재단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업무 공백이 있었다”며 “업계에서 개선안을 전달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처음 시행되는 제도이니 먼저 시험을 수행해 성적서를 제출하면 평가 과정에서 감안해 평가할테니 안심해도 좋다는 농진청의 의견이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살펴보더라도 ‘정부 부처’ 등과 업무를 진행하려면 ‘서면’으로 된 민원 접수 등이 이뤄져야 한다. 각각의 농약 제조회사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각 회사 담당자가 농약 등록 담당자들을 만나 의견을 구두로 제기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특히 “각각의 제조회사 입장이 다르면 다른대로 업계 의견을 모아 대응했어야 옳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국작물보호협회의 역할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터져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농진청 관계자는 “3~4년 전부터 작보협에 업계 의견을 모아 제출해 달라는 요구가 있을 때마다 의견 접수 된 것이 거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각 제조회사들 입장에서는 ‘동상이몽’으로 타사의 경쟁 제품이 등록 취소되면 자회사의 제품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되는 터라 한발 물러나 뒷짐지고 있는 형상이다.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인 태도로 다음에 같은 평가 항목에 자회사의 제품도 평가대상으로 오른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라벨 삭제 조치로 180억원 손실

이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농약 제조업계의 대응 방식에 따라 11개의 제품이 라벨 삭제 조치돼 약 180억원<표 1>의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조치 이후에도 ‘2011년 재등록 대상 농약’<표 2>이 32개 품목으로 2009년 기준 매출액은 자그마치 1055억원에 달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농진청도 “농작업자 노출량 시험 기준이 우리나라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실험 결과로 밝혀진 만큼 다음 법 개정을 서둘러 바뀐 기준으로 재등록 농약을 평가할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태도로 법 개정에 참여한다면 또 다시 불리한 조건에서 재등록 농약 시험이 실시될 수 있다. 농약 제조업계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대목이다.

업계 전문가는 “농약 제조업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500L SS기에 보호 캡 장착을 의무화 하는 등 농약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의 법 개정을 통해 농작업자 노출량 시험 자체가 필요 없도록 만들 수도 있는 일”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포스터 부착 등 다른 방법도 고려해야

이와 함께 이번 조치가 ‘등록 작물 라벨 삭제’로 결론지어지는 데 대한 질타의 목소리도 높다.

성급히 도입된 법률에 따라 결정된 사안을 ‘라벨 삭제’ 조치하고 개정된 법률에 의해 또 다시 ‘라벨 등록’을 허용할 경우 농업인들의 혼란만 가중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11개의 제품 매출액이 180억원에 달한다는 것은 그 만큼 농업인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반증이다. 이런 것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깨알 같은 라벨에서 ‘삭제’ 조치만 내린다고 농업인들이 일일이 확인해 가며 농약을 살포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조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특히 이 전문가는 “문제가 생긴 농약들이 일반소비자에게 위해한 것도 아닌데 라벨 삭제 조치는 너무 지나친 처사”라며 “삼성의 불산 누출로 매스컴이 시끄러운데 불산이 문제가 되면 불산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이번 조치가 같은 이치”라고 못박았다.

업계 전문가는 또 “행정 편의적인 조치”라고 일침하며 “진정으로 농업인들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각 농약 판매장에 홍보 포스터를 배포하고 광고 등을 통해 농업인들에게 위해성을 알리는 것이 훨씬 현명한 처사”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라벨 삭제’ 조치보다는 주의사항을 통해 ‘이 농약은 살포시 작업자에게 위해성이 있을 수 있으니 하루 2시간 이상 작업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문구를 삽입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일단 현행법상 문제가 나타난 농약을 전면 회수조치 하는 것이 맞고 차후에 위해성이 없다고 판명나면 사용토록 하는 선조치후평가가 농업인을 위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심미진 gaiaone@news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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