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이 농약 등록 업무 넘보나

2012.12.18 12:23:17

농산물 안전성에도 업계편의에도 역행

농촌진흥청의 농약 등록 업무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무리하게 가져가려 하고 있어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식약청이 농진청의 농약 등록 업무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법 개정에 나서 무리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농약 등록 업무는 ‘농약의 잔류허용기준’과 ‘농약의 일일섭취허용량’ 설정과 관련된 것이다.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은 업체가 관련 자료를 제출해 농진청과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에 제품등록을 완료하면, 식약청은 각 기관이 등록심사 과정에서 실시한 평가 결과를 제출받아 설정하고 있다.

식약청은 이 과정에서 평가 결과 요약본만으로는 잔류허용기준을 평가․설정하기 곤란해 자료를 업체로부터 직접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항을 2012. 4월에 법률이 아닌 고시로 정한 바 있다.

그러나 고시에 따라 농약 제조업체는 두 기관에 같은 자료를 제출하는 번거로움과 잔류허용기준 설정 지연에 따른 경제적 피해 등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최동익(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의원은 법적근거 없이 단순 고시만으로 식약청이 업체로부터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가 곤란하다고 판단, 지난 9월 25일 ‘식약청이 잔류허용기준 설정을 할 때 관련 자료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을 받은 관계 행정기관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 신청 절차·방법, 제출자료의 범위 등 세부사항은 식약청장이 정해 고시한다’는 요지의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했다.

식약청은 식품 내 잔류허용기준의 설정이 식약청 소관이라는 점을 표면적으로 내세우며 법률 개정을 통해 농진청이 농약 업체들로부터 제출받은 농약 등록 관련 서류를 모두 이관 받아 자신들이 농약 등록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농진청의 위해성평가엔 아무 문제 없다”

식약청의 이 같은 움직임에 농진청은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일단 식약청의 주장은 업체가 제품 등록을 위해 제출한 자료 중 전부가 아닌, 농약 등록을 위해 농진청이 자체 실시한 위해성평가 결과보고서 요약본만을 제공받기 때문에 ‘농약의 잔류허용기준’ 설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농진청은 그러나 ‘농약관리법’에 의해 농약 등록 평가를 실시하고 있어 농약 위해성평가 결과보고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농약관리법’은 말 그대로 ‘농약’을 관리하기 위한 ‘농약’에 관한 법이다. 농약은 농작물에 살포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농작물의 특성과 재배 환경 등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배경으로 갖춘 기관에서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평가를 내리는데 필수 요소가 된다.

이미 이 같은 전문 분야와 관련된 부분은 식품위생법에서 모두 다루기 어려워 식품위생법의 상위법인 식품안전기본법에서도 농약관리법을 위시한 식품관련의 여러 법에서 위해성평가를 할 수 있도록 명확히 하고 있다.

식품안전기본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식품안전기본법 제2조(정의) 5. ‘식품안전법령등’이란 식품위생법,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전염병예방법, 국민건강증진법, 식품산업진흥법, 농수산물 품질관리법, 축산물위생관리법, 가축전염병예방법, 축산법, 사료관리법, 농약관리법, 약사법, 비료관리법, 인삼산업법, 양곡관리법,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학교급식법, 학교보건법, 수도법, 먹는물관리법, 소금산업 진흥법, 주세법, 대외무역법, 산업표준화법,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 그 밖에 식품등의 안전과 관련되는 법률과 위 법률의 위임사항 또는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명령·조례 또는 규칙 중 식품등의 안전과 관련된 규정을 말한다.

제3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① 식품등의 안전에 관하여 제2조제5호에 따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 ② 식품안전법령등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경우 이 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 법만을 보더라도 식약청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식약청이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하는 기관이므로 ‘타 전문법에서 엄정하게 평가된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겠으니 동일한 내용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은 시류에 역행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실질적으로 농진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농약의 잔류허용기준’ 설정과 관련한 평가 부분도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농약의 독성 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독성 평가는 △농약 성분의 이화학적 특성 △농약 성분에 대한 각종 동물 시험데이터로 사람이 노출돼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양을 산출한다. 이를 통해 일일섭취허용량(ADI)를 계산해 낸다.

‘농약의 잔류허용기준’ 설정을 위해서는 ADI가 필요하다. 현재 농약 성분 중 ADI가 설정된 대상 성분은 350종으로 0.0002~3.0mg/kg b.w. 범위이다. 한국인의 기준 몸무게를 55kg으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ADI가 0.0002mg/kg b.w.인 농약 성분은 0.011mg까지, ADI가 3.0mg/kg b.w.인 농약 성분은 165mg까지 섭취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나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은 ADI의 80% 수준에서 설정된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수확한 농산물에 잔류되는 양은 ‘농약의 잔류허용기준’보다 훨씬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을 토대로 ‘농약 살포의 안전사용기준’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약 살포의 안전사용기준’은 농약 사용자가 작물을 재배할 때 농약을 살포할 수 있는 시기 및 사용할 수 있는 횟수를 정해주는 것으로 이를 지켜서 작물을 재배해 수확하면 그 농산물 중 잔류농약은 절대로 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할 수 없다.

‘안전사용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농약의 사용농도는 약효 시험에서 효과를 나타내는 수준 △농약 사용시기는 수확기를 기준해서 가장 근접하게 병해충이 발생될 수 있는 시기를 최종 살포시기로 하며, △재배 조건이 다양한 작물일 경우에는 농약잔류가 가장 많을 환경 조건에서 시험을 하게 되므로 실제 정상적인 재배 조건 하에서는 농약이 잔류허용기준 이상으로 검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은 안전성 확보를 위한 ‘관리’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농진청은 국내 재배 소면적 작물의 농약 잔류허용기준을 ‘유사기준’을 적용해 설정하고 있다. 이는 식약청의 고시사항으로 적용되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식약청은 유사기준 적용 때문에 잔류기준의 정확한 수치를 적용할 수 없어 위해성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사기준’이 설정되는 근거는 이렇다.

적은 면적에만 재배되는 일부 작물들은 농약 회사 입장에서 보면 해당 작물에 농약을 등록해 봐야 판매량이 별로 높지 않은 것들이다. 농진청은 1998년부터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해 지속적으로 등록확대를 해 오고 있지만 농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농민은 쓸 농약이 없다고 하소연하게 되고 등록되지 않은 농약을 사용해 잔류농약 검사에 적발되어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적인 애로사항이 있어서 식약청에서는 소면적 작물에 대해서 농약잔류허용기준 적용을 ‘유사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

‘유사기준’은 CODEX의 기준이 있는가를 확인하고 없으면 해당 작물이 속하는 작물 그룹의 허용기준 중 가장 낮은 기준을 적용하고 그것도 없으면 모든 허용기준 중 가장 낮은 기준을 적용하게 된다.

‘유사기준’의 설정 근거를 보더라도 지극히 합리적인 절차를 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식약청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PLS 시스템 도입은 현실성 없는 대안

식약청의 무리한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동익 국회의원이 입법발의한 ‘식품위생법 일부개정안’에는 수입농산물에 사용되는 농약의 기준이 없어 이를 설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농약관리법은 국내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기 때문에 수입식품 중 잔류농약에 대해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은 맞다.

수입농산물에 잔류되는 농약은 △국내에는 사용되지 않는 농약 성분이 잔류된 경우 △국내에 재배되지 않는 농산물에 국내 사용되는 농약이 잔류된 경우 △국내 재배가능 수입농산물에 농약이 잔류된 경우로 볼 수 있다.

식약청은 이에 따라 수입식품에 대한 잔류농약을 관리하기 위해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PLS)을 도입하겠다고 하고 있다. 모든 검사 대상 농약을 목록화해 기준이 없는 것은 최저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목록화 된 농약성분은 모두 검사를 해야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시행한다 하더라고 적용이 만만치 않다. 대상이 되는 모든 물질의 표준품을 확보해 검사기관에 보급해야 한다.

또 모든 농산물을 검사할 때마다 모든 대상성분을 검사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분석기기, 인력, 경비가 지금의 몇 배가 들지 모를 뿐 아니라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농진청의 해석이다. 일본, 유럽연합이 PLS를 시행하고 있고 미국은 Zero-tolerance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모든 유해물질이 대상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제도는 목록에 없더라도 검사에서 검출되면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식약청은 게다가 수입식품에 잔류되는 농약에 대한 기준 설정을 위해 다국적 농약 원제 공급사들을 개별 접촉해 수입되는 농산물의 잔류허용기준(Import tolerance, IT)을 설정해 줄테니 자료를 제출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견 타당한 절차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을 살펴보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식약청은 원제 공급사들에게 받은 자료를 대학교수 등 외부 전문가에게 용역을 주고 그 결과자료를 받아 허용기준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농진청 공무원이 직접 평가해 제시한 결과 자료는 믿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펴는 식약청이 이와는 반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설정된 수입 농산물의 잔류허용기준(IT)은 대부분 국내 농산물에 적용되는 기준보다 높게 설정돼 있으며 심지어 국내에 수입될 가능성이 희박한 신선채류에 대한 기준도 설정하고 있다.

수입 농산물은 수송과 보관기간 동안 품질유지를 위해 농약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잔류되는 농약이 많아지고 허용기준도 따라서 높아진다. 이에 따라 수입농산물은 농약이 많이 묻어도 안전하다는 결과로 이어져 국내 농산물이 역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다.

농진청은 이처럼 국내 실정과 농업의 현황, 국내 농산물이 재배되는 절차 등을 고려해 수입농산물과 비교할 수 있는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농진청이 수입 식품중의 잔류농약에 대한 검토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최 의원의 ‘식품위생법 일부개정안’ 발의에 대한 보건복지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농약 등의 등록과 잔류허용기준 설정 업무가 이원화돼 있다. 이에 따라 필요한 자료를 업체로부터 직접 제출하게 하지 않고 후생노동성 장관이 잔류허용기준 설정을 위해 농림수산성 장관으로부터 자료제공 등 필요한 협력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품등록부터 잔류허용기준 설정까지 일원화해야”

농진청은 이에 대해 일본을 제외한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호주 등의 주요 선진 국가들은 농약관리법을 운용하는 조직이 농약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농약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농약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하는 일원화 체계가 농약의 등록 안전관리 및 등록 절차 간소화 측면에 더 적절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식약청이 농약잔류허용기준 설정 업무를 가져오기 위해 업계의 편의 제공이라는 명분을 들고 있는데 이 또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실제로 농약 제조업계는 농진청이 농약 등록 평가를 진행하는 동안 식약청이 따로 농약잔류허용기준을 설정토록 업무 협조를 이룬 바 농약 등록 기간이 전혀 단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농진청도 식약청이 독자적 업무처리를 하게 된다면 농약등록 사항과 엇박자가 발생해 농약관리법과는 따로 놀게 될 것이고, 업무 협조를 한다고 할지라도 식약청의 평가를 기다렸다가 농약등록 검토를 해야 할 것이므로 농약의 등록기간은 단축될 것이라는 말과는 달리 더 늦춰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누가 하든 식품안전관리만 잘 하면 되고, 식품안전을 위해서는 중복적으로 해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설명처럼 식약청이 한다고 해서 안전성이 강화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농업현실 전반과 농작물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불합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게다가 자칫 기준을 초과한 농산물의 발생으로 잦은 민원이 발생되는 것이 귀찮아 완화된 허용기준을 정한다면 농민의 농약 오남용을 부추기게 될 것이며 소비자에게 농약의 노출량을 증대시키는 이율배반적 결과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농약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심미진 gaiaone@news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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