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청이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무리하게 농약잔류기준(MRL) 설정 업무를 가져오려고 하고 있어 애꿎은 농약 제조업계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최동익(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국회의원은 지난 9월 25일 ‘식약청이 잔류허용기준 설정을 할 때 관련 자료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을 받은 관계 행정기관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 신청 절차·방법, 제출자료의 범위 등 세부사항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정하여 고시한다’는 요지의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했다.
이미 MRL은 농약 제조회사들이 농약 등록 시 농진청에 제출한 성적서를 농진청이 검토 후 식약청이 농진청의 자료를 받아 설정토록 돼 있는 것을 법으로 묶겠다는 것이다.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 의원입법
최 의원은 당초 수입농산물의 국내 농약 잔류허용기준이 없어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근거를 들며 이 법안을 추진해 왔다고 밝혔다. 다만 이 잔류허용기준 설정 과정에서 식약청이 관계기관들로부터 관련자료를 원활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이 부분도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의한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공동발의: 전병헌, 배기운, 유대운, 김용익, 김춘진, 전정희, 정성호, 도종환, 안홍준, 한명숙)은 국민의 안전한 밥상을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며 “단기적으로 식품위생법을 개정해 잔류농약 등에 대한 허용기준설정 근거를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포지티브리스트시스템(Positive list system)을 도입해 국내 및 수입농산물 중 농약이나 동물용의약품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법률안에 대해 지난달 22일 보건복지위원회의 검토보고서가 발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농진청, 식약청, 농약업계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 기관 서로 다른 입장차 보여
농식품부, 법적 근거 충분···신설 불필요
농식품부는 ‘식품위생법’ 제7조제1항에서 국민보건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식약청장이 식품에 대한 성분규격을 정해 고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농약의 기준설정 요청절차를 별도로 규정할 실익이 없다.
또 농약은 ‘농약관리법’에 따라 등록단계에서 독성, 잔류성 자료 등을 등록부처에 제출한 후 검토결과 등록 결정되면 식약청과 협의해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기존의 절차와 상이한 내용이므로 반대한다.
보건복지부, 업무 협력 어려워 개정안 찬성
보건복지부는 최근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농약의 잔류허용기준 설정 절차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현재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할 때 농약 및 동물용 의약품의 등록업무를 담당하는 부처로부터 관련 자료가 적절히 제공되지 않아 기준설정이 지연되거나 적정한 판단이 곤란한 사례가 다수 발생하므로 개정안에 찬성한다.
농진청, 농약관리법 내에서 해결
농약의 등록업무를 담당하는 농진청은 첫째, 농약에 관한 사항은 농식품부 소관의 ‘농약관리법’에서 규율하고 있으므로, 통일적 업무를 위해 잔류허용기준의 설정요청 및 자료제출에 관한 사항은 ‘식품위생법’이 아닌 ‘농약관리법’에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둘째, 개정안은 사실상 동일한 업무를 별도의 기관에서 중복해 담당하는 것으로서 행정낭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즉, ‘농약관리법’ 제9조에 따라 신규 농약 등록을 위해서는 총 47개 항목을 심사․평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미 식품 중 농약 잔류허용기준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이러한 심사․평가과정에 환경부, 식약청, 농식품부 및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농약전문위원회가 구성돼 있고 그동안 식약청의 주무부서가 여기에 참여해 왔으므로 현행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
셋째, 농약 등록을 위해 필요한 자료가 적게는 수백 페이지에서 많게는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데 동일한 자료를 업체로부터 2개 기관에 제출토록 하는 것은 기업에게 부담이 야기되고, 환경부에서도 수질․토양에 대한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은 농촌진흥청의 평가보고서를 반영해 설정하고 있으므로 식품을 달리 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다.
식약청, 잔류허용기준 업무 우리 것!
식약청은 첫째, 농약사용 등록과 잔류허용기준 설정은 ‘농약관리법’과 ‘식품위생법’으로 별도로 관리되고 있는데도 농진청에서는 업체로부터 제출된 자료를 임의로 평가해 그 결과의 요약본만을 제공하고 있어 안전성 평가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식약청은 그동안 제한된 정보만으로 전문위원회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농약업계는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돼야만 농약판매가 가능한데 농진청의 자료 비협조로 그 설정이 지연돼 피해를 보고 있다.
셋째, ‘농약관리법’에는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농진청은 농작업자가 작업시의 안전을 위한 기준인 안전사용기준만을 설정할 수 있으므로 농작물을 섭취할 때의 안전성을 위한 기준인 잔류허용기준 설정 업무는 농촌진흥청의 소관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농약 등록을 위해 제출하는 자료와 잔류허용기준 설정시의 제출자료는 상이하므로 업계에 새로이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업계가 미리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자료를 제출할 경우 농약 등록절차(90일∼180일)와 잔류허용기준 설정절차(210일∼365일)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어 농약허가기간이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
농약업계, 양기관 동시검토 등록기간 단축 안돼
농약 제조업체의 경우 개정안이 입법화될 경우 자료를 2개 기관에 제출하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하고, 기존 방식에 따른 잔류허용기준의 설정으로 인해 지금까지 안전성의 문제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개정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전반적으로는 농약 자체의 안전성 평가는 농진청에서 담당하고, 농약이 식품에 잔류해 인체에 어떠한 위해가 발생하는지를 판단하는 업무는 식약청이 담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정부기관끼리 자료협조 등 업무조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기관 간 다툼으로 인하여 농약업계에 피해를 주고 있다. 또 식약청과 2010년부터 자료를 공유해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한 결과 기존보다 등록 기간이 단축되지 않아 양 기관에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업계에 큰 이익을 가져올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단, 장기적으로는 전문성을 보유한 두 기관이 평가기준 등을 합의해 통합된 기준을 마련하고, 농약 등록과 잔류허용기준의 평가절차를 일원화해 허가기간의 단축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등록서류를 농진청에 전자 파일로 제출토록 돼 있어 이를 식약청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자, 식약청 자료 적시에 제출 받아야
소비자 측면에서는 ‘식품위생법’의 규정에 따라 식약청이 농약 등의 잔류허용기준 설정업무를 담당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식품 내 농약의 인체위해 정도가 정확히 측정돼 잔류허용기준이 고시되어야 안심하고 식품을 섭취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식약청이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할 때 필요한 자료를 적시에 제출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본다.
업체가 양 기관에 서류 제출···업계 부담
보건복지위원회는 이처럼 부처 간 의견이 대립하는 것을 농약 등의 잔류허용기준설정업무가 개정안으로 인해 농진청 중심에서 식약청 중심으로 개편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농약 등의 잔류허용기준 설정의 문제는 소비자들이 섭취하는 식품의 안전성과 농약 제조업체의 영업이익의 보호를 동시에 고려해 결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농약 등의 등록과 잔류허용기준 설정 업무가 이원화돼 있는데 필요한 자료를 업체로부터 직접 제출하게 하지 않고 후생노동성 장관이 잔류허용기준 설정을 위해 농림수산성 장관으로부터 자료제공 등 필요한 협력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식약청이 자료 요구 규정 신설 타당
보건복지위원회는 이에 따라 현재 실무상으로 잔류허용기준 설정은 별도의 신청 없이 농약 등의 제품 등록심사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절차를 신설하는 것이고, 자료제출과 수수료 납부의 규정은 업체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보건복지위원회는 개정안이 식약청이 농약 등의 잔류허용기준 설정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원활하게 확보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 그 취지이므로, 새로운 절차를 신설해 업체로부터 별도의 자료를 제출하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의 경우와 유사하게 농진청에서 농약등록 시 업체로부터 받은 자료 중 잔류허용기준 설정에 필요한 독성 및 잔류자료 전체를 식약청에 제공하도록 하는 규정만 신설해 개정안의 취지를 달성토록 해야 한다고 봤다.
농진청이 등록 업무 대부분 담당···일원화 효율적
이 같은 보건복지위원회의 검토 결과는 결국 식약청이 농진청의 업무 대다수를 가져올 수 있는 빌미를 법률 안에 마련해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그러나 농진청이 등록 업무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잔류허용기준 설정도 농진청에서 일원화해 담당하는 것이 옳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또 일본 외에도 미국 등은 등록 업무 부서에서 모든 검토와 설정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일본의 경우만을 따를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이다.
이번 법률개정안은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해 심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에 따라 심의시 양 부처의 국장들을 참석을 요청해 각 기관의 입장 대변 시간이 주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