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화양구곡과 과묵한 호숫가 산막이 옛길

2012.07.21 13:18:54

민물새우 듬뿍 넣은 매운탕과 유별난 고추사랑

 
산 높고 물 맑은 충북 괴산 기행
마침내 한여름의 빗장을 열어젖힌 듯 무지막지하게 더웠던 그 날, 한밤중이 돼서야 괴산 길목에 들어섰다.

굽이굽이 휘어진 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곡선의 정점에서 ‘느릅재 해발 몇 미터’라 적힌 표지판을 봤다.

느티나무의 고장, 충북 괴산에 들어선 것이다. 바람결에 그 흔한 고추냄새가 실리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없잖았지만 깊은 계곡으로부터 불어오는 초록빛 바람내는 얼핏 맡아본 것도 같다.

●●● 속세를 떠난 산 속 아홉 골짜기
속리산(俗離山). 속세를 떠난다는 산은 충북 괴산에도 그 한 자락을 내줬다. 산은 그렇게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 계곡에 아홉 절경을 흘려놓았다.

일명 ‘화양구곡’. 그 명칭은 사람이 붙인 것이지만 그 모습은 사람의 것 같지 않다.
물길 저편에 하늘을 떠받친 듯 서 있는 ‘경천벽’이 그러하고 깨끗한 물이 소를 이뤄 구름 그림자가 비치는 ‘운영담’도 이미 인간사 부대낌을 초월한 듯 맑디맑다.

콸콸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잠깐 쉬어가며 금빛 모래를 토해내며 잠깐 쉬어가는 ‘금사담’은 그 너른 바위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적이고, ‘능운대’ 바위는 구름을 찌를 듯 높다.

계곡 옆으로 난 평탄한 길을 따라 읍궁암, 첨성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 등의 명소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명칭은 화양구곡을 특히 좋아한 우암 송시열이 붙였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좌의정까지 지낸 인물인 그는 ‘금사담’ 골짜기에 ‘의암재’라는 암자를 짓고 이곳에 머물며 수양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금사담 바위 위에 앉아 의암재를 바라보고 있자니 정말? 여기서? 공부가 됐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우암 선생을 곡해할 뜻은 없다. 그저 범인에게 이곳은 독서보단 자연을 둘러보며 지인들과 소풍하기 좋은 곳이라서 말이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 여기에 보태지는 새소리 스타카토, 물속엔 부드러운 모래톱, 상 펼치기 딱 좋은 너른 바위, 수려한 초록 잎에 폭 둘러싸인 계곡과 잔잔한 바람. 그냥 그렇게 아무 바위에 앉아 하루 온종일 가만히 있어도 좋을 듯해서다.

계곡을 찾은 사람들도 쉬 돌아가지 않는다. 물속에도 들어갔다가 올갱이 줍고, 계곡변 매운탕집 평상에 자리 잡고 세월아 내월아 하며 그저 더위가 가시길 기다린다.

계곡에는 올갱이가 꽤 흔한지 사람들은 숙인 허리를 펴지 못한 채 흐르는 물에서 얼굴을 떼지 못하더라.
 
●●● 올갱이, 옥수수, 그리고 고추
올갱이는 물 맑고 산 좋은 괴산의 대표 특산물 중 하나다. 다슬기라고도 불리는 이 좁쌀만 한 생물은 국물이 특히 시원하다. 괴산에는 올갱이 해장국 식당이 흔하기도 하지만 아예 그 이름을 딴 마을도 있다.

괴산의 명소, 산막이 옛길 앞에 위치한 둔율 올갱이 마을이 그 곳. 마을은 여느 시골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집 있고 밭 있고 개천이 있다. 다만 이곳에는 개천에 올갱이가 유난히 많고 단체로 옥수수 따기, 감자 쪄먹기 등의 체험이 가능하다.

옥수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괴산 도로변에 참 흔한 게 바로 옥수수다. 대부분 대학찰옥수수이다. 넓게 심겨진 키 큰 옥수수 떼가 바람결 따라 그 이파리 뒤집는 모양새는 꽤 인상적이다. 도로 위에서 내려다보자니 초록 바다의 일렁거림이 연상된다.

괴산에서 옥수수보다 유명세를 타는 작물은 뭐니 뭐니 해도 고추다.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임야인 괴산에서 청결고추는 매년 8월 고추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그 위상이 높다.

고추는 이제 막 그 초록이 농염해지기 시작했다. 빨갛게 익으려면 여름빛을 더 받아야 하지만 고춧가루는 시장 어느 곳에 가도 흔하게 구할 수 있다.

읍내 어느 방앗간 앞에는 한여름 뙤약볕에 누워 가루가 되어가는 으깨진 고추를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6월의 그 날, 고추유통센타는 문을 닫았다.
 
●●● 산이 물길을 막았다 하여 ‘산막이’ 옛길
남은 아쉬움은 산막이 옛길에서 초여름을 만끽하며 풀었다.

산이 물길을 막았다하여 예부터 ‘산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길은 아기자기하고 호수는 잔잔하다.

뭐 특별할 게 있을까 싶지만 뱃길, 산책로, 산길 등이 고루 배치돼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곳이다.

길 곳곳에 정말 쉬어가기 좋게 그네 모양의 의자나 벤치가 많다. 약수터에는 나무로 깎은 수로와 작은 물레방아도 놓여져 있다. 관리인이 꽤 꼼꼼한 모양이다.

적당한 곳에 앉아 호수를 바라본다. 미동도 않는 호수가 주는 고요한 무게감이 여름철 특유의 수선함과 오묘하게 어울린다.

호수 위로 배가 한 척 지나간다. 산막이길 입구에서 옛길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을 오가는 배다. 배가 지나가자 과묵한 호수는 말보다 떨림으로 그 느낌을 전한다. 배가 지난 궤적을 되새김질하는 수면.

내 마음은 호수, 그대 노 저어 오라던 시인은 이 풍경을 봤던 걸까. 초여름 파란 하늘이 비친 호수 표면에 그려지는 작은 떨림에 마음이 조금 설레었던 것도 같다.
<여행작가 은지용>


뉴스관리자 newsam@news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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