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농가 생존 위협하는 벌집군집붕괴현상

2022.04.01 10:28:35

지난 2월 경남과 전남 지역
봉군(벌통) 11만개 꿀벌 사라져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양봉농가 피해 늘어
정부, 민관 합동 피해 조사 및 종합적 지원책 추진

최근 전국적인 월동벌 집단 폐사 피해가 발생하면서 양봉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경남, 전남, 제주 지역의 피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농촌진흥청은 지난달 13일, 전국 9개 도 34개 시·군 99호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1월 7일부터 2월 24일까지 민관 합동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양봉농가들 사이에서 벌집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농촌진흥청은 최근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월동 꿀벌 폐사 피해 원인으로 꿀벌응애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와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벌집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은 정확한 최초 발생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2006년부터 갑자기 논란이 된 현상으로 꿀벌의 군집이 동시다발적으로 붕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러 나간 일벌들이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꿀과 꽃가루가 부족해지면 벌통에 남아있는 벌들은 일벌을 길러낼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까지 버티다 결국 벌통 하나가 그대로 몰살당하고 만다.


특히, 현재까지 정확한 발생 원인이 규명되고 있지 않으며, 꿀벌의 집단 폐사는 꿀벌 농가의 소득감소뿐만 아니라 꽃가루를 통해 수정하는 식물 및 농작물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이러한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미국과 유럽에서 최초 보고
정확한 원인 규명 없으나 다양한 가설 제시

벌집군집붕괴현상은 미국과 유럽에서 1990년대 초반에 가장 먼저 보고됐으며, 아시아에서도 2007년부터 서서히 보고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양봉업자를 중심으로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가 매우 심각해지면서, 대책 마련을 위해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대통령은 2014년 대통령 직속으로 전문가 자문회의까지 소집하기도 했다. 또한 2016년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USFWS)이 하와이 토종 꿀벌 7개 종을 절멸 위기종 보호법에 따라 보호해야 할 종으로 결정할 정도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벌집군집붕괴현상은 주로 양봉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된 것은 없으나 주요 원인으로는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다. ▲무선장비들이 발생하는 전자기파, ▲유전자 조작 식물, ▲각종 유기화합물,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지구온난화, ▲지구 자전축의 변화 등이 그것이다.


먼저 전자기파의 경우 독일에서 실험을 통해 휴대전화 전자파에 노출된 꿀벌들이 집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신빙성 높은 가설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2011년 5월에는 스위스에서도 동일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2012년 영국·프랑스·이탈리아·미국에서 연이어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 ; 니코틴계의 신경 자극성 살충제) 계통의 농약 성분이 군집붕괴현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 농약 성분을 씨앗에 뿌리면 식물이 자랄 때 모든 부위로 약 성분이 퍼진 뒤 진딧물 등 벌레의 신경계를 마비시켜 죽이는데, 이때 꽃가루나 꽃꿀에도 미량이 섞여 들어간다. 


문제는 꿀벌이 이 농약에 노출되면 길 찾기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해당 군집의 여왕벌 출생이 감소하게 된다. 특히 매우 적은 양으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13년 해당 농약을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2년간 해당 농약을 사용중지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2014년 학술잡지 양봉(Journal of Apiculture)에 따르면 태양의 흑점 활동이 꿀벌의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것이 유력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꿀벌들은 꿀과 꽃가루 채취가 끝나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벌통으로 돌아오기 위해 새나 돌고래처럼 지구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을 이용한다. 문제는 태양 흑점 활동으로 발생하는 자기장의 혼란이 꿀벌의 자기감지능력에 영향을 미쳐 꿀벌이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벌집에 남아있는 여왕벌과 애벌레도 먹이 부족으로 결국 죽게 된다는 이론이다.


연구를 주도한 꽃가루 은행(Pollen Bank)의 토마스 훼라리(Tomas Ferrari) 박사는 “자기장 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벌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무리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일벌들이다”라며, “이들이 태양 흑점에 의한 자기장변화로 길을 잃고 죽게 되면 무리는 집단 폐사의 재앙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벌의 위치 찾기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형태의 자기장 교란 현상을 실험한 결과 자기장 교란의 영향을 받은 벌들은 벌통에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연구진은 각종 데이터 분석을 통해 태양 폭풍의 증가와 자기권 혼란, 꿀벌 무리의 감소 사이에 상호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0년대 꿀벌응애·백묵병 확산, 봉군 40% 피해
1993년 중국가시응애 피해, 양봉농가 70% 손실

국내의 경우 1980년대 꿀벌응애·백묵병 확산으로 전국 양봉농가의 벌통 40%가 피해를 입었으며, 1993년도에는 중국가시응애 피해로 양봉농가의 70%가 경제적 손실을 입기도 했다.

 

특히, 토종벌의 에이즈(AIDS)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Sacbrood, 囊蟲蜂兒腐敗病)이 2008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발생해 2010년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현재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이 퍼지기 전에 전국 토종벌 벌통이 42만여 개였던 것이 2016년에는 1만개로 줄어들기도 했다.(본지 2019년 12월 1일자 ‘2000년 역사의 국내 양봉산업’ 참고)


이와 관련해 농림축산식품부는 2010년말 낭충봉아부패병을 가축전염병으로 지정한 바 있다. 반면에 낭충봉아부패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병에 걸린 꿀벌들을 살처분하는 것에 대한 보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피해가 발생하면 양봉농가의 경제적 손실이 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 국내 양봉농가에서 벌집군집붕괴현상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지난 2월 경남과 전남 지역의 벌통 11만개의 꿀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특히 경남지역의 경우 전체 8만5,045개 벌통 중 약 54%인 4만5,965개 벌통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꿀벌응애류 및 말벌류 피해가 원인
예방 약제 사용량 준수 및 적기 방제 필요

농촌진흥청은 지난달 13일 이번 월동 꿀벌 폐사 피해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통해 거의 대부분 피해 벌통에서 응애가 관찰됐고, 일부 농가의 경우 꿀벌응애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약제를 최대 3배 이상 과도하게 사용해 월동 전 꿀벌 발육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예찰이 어려운 응애류의 발생을 농가에서 인지하지 못했고 지난해 적기 방제가 미흡해 월동 일벌 양성 시기에 응애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월동 꿀벌의 약군화(弱群化)를 초래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등검은말벌은 일벌 포획력이 탁월해 유인제 또는 유인 트랩으로 완전방제하기가 어려워 지난해 10월 늦게까지 패를 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제가 매우 어려운 기생성 응애류와 포식성 말벌류는 월동 봉군 양성시기인 8~9월에 최대로 번식한다. 응애류는 꿀벌의 발육 번데기에 기생하고, 말벌류는 벌통 출입구에서 일벌을 포획해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9∼10월에는 저온현상이 발생해 꿀벌의 발육이 원활하지 못했고, 11∼12월에는 고온으로 꽃이 이른 시기에 개화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 봉군을 약화시킨 원인 중 하나로 보고있다. 이렇게 약화된 봉군에서 월동 중이던 일벌들이 화분 채집 등의 외부활동으로 체력이 소진됐고, 외부기온이 낮아지면서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월동기간 일벌들은 공 모양으로 밀집되어 형태를 유지하는데, 강한 봉군들은 단단하게 밀집해 외부환경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약한 봉군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피해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경남 함양군은 지난 8일 발 빠른 피해수습 대책에 나섰다. 함양군에서는 200여 양봉농가가 2만2,000여군의 꿀벌에서 연간 530여톤의 꿀을 생산해 87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지난 1~2월 군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9농가 3,000여군 정도가 벌집군집붕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피해가 경남뿐만 아니라 충북, 전남 등의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함안군은 벌집군집붕괴현상의 원인 중 하나인 밀원지 감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양봉농가에 밀원지 조성을 위한 유채종자를 긴급하게 보급하기로 했다. 유채꽃은 꿀이 많이 생성되는 밀원으로 꿀벌의 수분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 기관, 종합적 지원 정책 마련
양봉농가 경영안정과 피해 확산 방지

농림축산식품부는 피해 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해 농업경영회생자금과 농축산경영자금 등 지원사업을 안내하고, 꿀벌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가축방역 대응 지원사업을 활용해 꿀벌 구제 약품이 신속히 지원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농업경영회생자금은 경영 위기 준전업농 이상 또는 부채 있는 경영체 및 개인에게 고정금리 1%로 20억원 이내 지원된다. ▲농축산경영자금은 소규모 축산농업인, 재해 입은 농축산업인에게 연2.5%로 농가당 1,000만원 이내 지원된다. ▲가축방역 대응 지원사업은 응애, 노재마, 낭충봉아부패병 등 총사업비 74억원 규모로 지원된다.


농촌진흥청은 정확한 피해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 현장에 보급할 계획이다. 특히 꿀벌응애 친환경 방제기술과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등검은말벌 조기방제기술을 개발하고, 월동 꿀벌 관리기술 자료 발간과 배포를 통해 현장 기술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도 응애 구제제 적정 사용요령에 대한 교육을 확대하고, 질병 조기진단과 기생성 응애류의 최적 약제 선발을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산업체와의 공동연구로 안전성과 효능이 뛰어난 천연물 유래 응애 구제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양봉산업 관계자는 “양봉 전염병과 관련해 봉군을 살처분하는 경우에도 양봉농가가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며 “현재 ‘가축전염병예방법’에는 제2종에 낭충봉아부패병과 제3종에 부저병만이 등재되어 있을 뿐 이마저도 재해보험 가입 및 살처분에 대한 보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최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꿀벌응애 등 양봉에 치명적인 병해충 피해에 대해 제1종 전염병으로 등재함으로써 보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2020년 충청남도농업기술원 산업곤충연구소에서 수행한 ‘꿀벌 기생성 응애류 방제기술 개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양봉 주요 병해충 피해 정도는 응애류 > 부저병 > 말벌 > 노세마병>기타(설사병, 백묵병, 소충) 등의 순으로 양봉농가 꿀 생산과 소득에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피해가 큰 꿀벌응애류 방제약제 이용 비율은 합성 화학농약 방제가 62.1%로 피레스로이드 (Pyrethroid)계 살충제 플루발리네이트(Fluvalinate) 39.1%, 포름아미딘 (Formamidine)계 살충제 아미트라즈(Amitraz) 19.5%, 브로모프로피레이트(Bromopropylate) 3.5%였으며, 반면 친환경적 방제가 37.9%로 구연산(Citric acid) 15.5%, 개미산(Formic acid) 14.6%와 옥살산(Oxalic acid) 7.8%로 조사됐다. 꿀벌응애류 방제를 위한 연중 약제 처리 횟수는 10회 이상이 32%로 가장 높았으며, 7~8회 이상 비율이 전체 응답률의 78%를 차지했다.   



이창수 cslee69@news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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