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저렴한 가격의 농자재를 구입, 공급한다는 이 최저가 입찰제도가 외국산 농자재의 국내 시장유입을 촉진한다면 어찌해야 하나.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사대예우라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에 의한 세계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너무 심한 비약인가.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지금 국내 농기계 시장에서 일본산 농기계의 시장장악은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농업기계화를 위해 헌신해온 수 많은 전문가들은 허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루아침 “도로아미타불”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 대해 서로 간에 탓만을 일삼고 있으며 뒷짐을 진 자들 역시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힘들여 농기계 기술개발과 농업기계화를 위해 노력해온 산업 역시 수출로 매진하여 이 위기를 돌파하려 하지만 불안하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매섭게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세계화의 된 서리를 맞고 있다. 토종 농기계 업계들은 신자유주의가 기술과 자본, 자원면에서 열위인 기업이나 국가에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자칫 철저하게 유린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가치사슬에서 하위를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해온 전부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몸소 아프게 겪고 있을 것이다. 이것조차 못 느낀다면 사실상 미래는 없다. 일본 농기계 판매상에 불과한 토종 농기계 산업이 될 터이니까. 일전에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 진전과정에서 닥쳐올 수 있는 온수주청와(溫水煮靑蛙)라는 경고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아니 이미 이에 대처한 정부와 산업계, 농협 등의 노력이 전개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일본산 농기계의 범람과 그 원인에 대한 시각은 관련 주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일본산 농기계가 우리 농업을 지배하게 될 경우 나타나게 될 다양한 문제이다. 국내 토종 농기계 산업의 파괴는 곧 고용과 부가가치의 소멸을 명백하게 유발하게 될 것이다. 농기계 무역 수출입에서 무역 적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수입산 농기계 가격의 인상에 대항할 여력이 없으니 농기계 가격의 고공행진은 명확하다. 여기에 사후봉사에 필요한 각종 부품가격의 폭등은 자동차에서도 익히 보는 바와 같다. 농민들의 선택폭은 제한될 것이다.
국가경제와 농기계 산업, 농민들의 농기계 사용 분야에서 발생될 것이 확실시 보이는 위와 같은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하는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부르짖고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리하라할지 모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적 증명들은 너무 많다. 철저한 시장경제가 아니더라도 자원의 희소성과 이동의 제한성, 외부효과, 불완전 정보와 공정성 등으로 인해 이론의 현실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최선이라는 꿈같은 생각을 제발 버려야 한다. 그래야 답이, 바람직한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다. 그리스 사태를 보고도 자각하지 못한다면 밝은 미래는 없다.
물론 우리나라만을 중심에 두고, 스스로만의 삶을 구가하는 쇄국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아니다. 북한과 같이 국제적인 교류를 최대한 억제해야 할 이유도 없다. 어느 정도는 국내 토종 농기계 기업들의 제품이 시장에서, 농촌에서 거래되고 사용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 어느 분야이든 자립기반이 무너질 경우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징비록 전체를 꿰뚫는 요체의 두 문장, “우리를 구할 곳은 우리 뿐이다”와 “준비한 사람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를 금과옥조로 삼아야한다. 그래야 한다고 외쳤건만 과연 우리 토종기업과 산업,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영화 ‘광해’에서 공생·상생을 외치던 광해군의 포효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를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지도자 아니 어느 작은 조직이라도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을 찾을 요량에서이다. 가짜 왕을 내세워 정치적인 위기를 벗어나려 했던 광해군. 하지만 이 가짜 왕의 왕 같지 않은 정사 펼침에 제대로 된 왕이 되는 이야기이다. “임금이란 자기의 뜻대로만 살수 없다”는 대사에서 국민의 뜻을 살피고 어루만져야 한다는 깊은 뜻을 일깨우고 있다.
농협의 농자재 시장에서의 위상은 어떠한가. 주력 농자재인 농기계와 농약, 비료에서의 위상은 가히 절대적이다. 농약과 비료회사, 그리고 수많은 유통관련 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농협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농자재를 가장 저렴하게 구입해서 농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경제적 약자인 농민들을 하나의 거대 수요자로 묶고 시장에서의 교섭력을 높여 가능한 저렴한 가격에 농자재를 구입, 공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두된 것이 “최저가 입찰제도”에 의한 농자재 구입과 공급이다. 따라서 외국산이든 국내산이든 효율성을 기초한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만약 저렴한 가격의 농자재를 구입, 공급한다는 이 최저가 입찰제도가 외국산 농자재의 국내 시장유입을 촉진한다면 어찌해야 하나.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다양한 지향가치인 효율성과 자유시장의 확대, 자원과 금융의 용이한 이동과 활동 등을 주장하는 것과 결과적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모와 기술면에서 열위인 우리 농자재 기업들의 생존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 역시 두 주장으로 부터의 결과적 사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적이고 완전한 농산물 시장개방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사대예우라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에 의한 세계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너무 심한 비약인가. “백성들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못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나라, 내백성이…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라는 피를 토하는 듯한 절규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생, 상생을 외치던 광해군의 마지막 포효가 귀에 가득하다. “왕이 되고 싶소이다. 하지만 나 살자고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또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싫소. 진짜 왕이 그런 것이면... 내 꿈은 내가 꾸겠소.” 마지막 화면을 채운 자막만으로 경제의 공평성과 사회의 정의가 이뤄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광해, “제 백성을 살리려 명과 맞섰던 단 하나의 조선의 왕이다”라는 말에는 마음이 숙연해 진다. 이 장면에서 농자재시장에서 절대적 지위에 있는 농협과 갈수록 어려움이 더해가는 농기계 산업이 중첩되어지는 것은 아마도 지도자적 지위의 농협의 행태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