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 기업들의 거품적인 가격인상, 품질개발 늑장, 미지근한 산업구조조정 개선의 의지가 강력하다면 합의점 도출이 가능하다. 농협도 최저가입찰의 문제를 인정하고 수정·개선하면 될 것이다. 국가와 농업발전, 자주성 확보, 토종 농기계기업의 성장과 농협의 기능 수행이라는 차원에서 허심탄회한 자기반성과 통찰이 필요하다.
행동을 촉발하게 만든 유기체의 내적인 상태 또는 조건을 동인·동기라고 한다. 여기에 어떠한 행동을 매개로 해서 이러한 동기로 인한 갈등·긴장을 해결하려는 외적환경에 대한 대응을 유인(incentive)혹은 유발성이라 한다. 이러한 동기와 행동과의 역학적인 관계 전체를 우리는 동기유발(動機誘發, motivation)의 과정이라고 한다. 행동 내지는 어떠한 현상이 현실에서 확인되지만 그 동인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늘 하나의 동기유발에 의한 행위가 하나의 동인으로 귀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추이와는 매우 달리, 국내 농기계 시장에서 토종 기업들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농기계를 판매하는 현장 농기계 대리점들의 절규와 함께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들이 목격된다. 분명 이러한 현상에 상응하는 동인이 있을 것이지만 동인의 특정화 규정은 어렵다. 다양한 관련 변수간의 상호연관 분석과 경로 분석 등을 통해 전문적인 의견이 제시되지만 사실상 그 상호관계라는 것이 말로 하듯 쉽게, 그리고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 간에 합의로 귀결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려하는 국내 농기계시장의 현상을 좀 더 살펴보자. 2013년 국내 이앙기시장에서 수입산 완제품의 비중은 59%, 수입산 엔진 장착 이앙기의 비중은 41%이다. 콤바인은 전자 비중의 29%, 후자의 비중이 49%, 합하면 78%, 80%에 육박한다. 트랙터는 각각 15%, 40%이며 이를 합하면 55%이다.
엔진의 해당 농기계에서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어서 정확하게 이들 중요 기종에서 외국 제품의 비중을 가늠키는 어렵다. 하지만 어림해서 봐도 이앙기시장에서 토종기업은 퇴출되었고,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1∼2년 사이 콤바인에서도, 조금 기간이 늘겠지만 트랙터 시장에서도 우리 토종 농기계 기업들의 퇴출은 명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국산 농기계의 지배적 상황·결과를 두고 중요 관련된 자(조직)들이 주장하는 원인은 다르다. 농기계업계에 따르면 여러 동인 가운데 농기계 은행과 매취사업시 최저가에 의한 입찰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스스로 기술개발에 늦장을 부렸고, 오히려 일본산 농기계를 수입해서 팔면서 그들의 시장을 만들어 줬다는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농협은 농민에게 보다 저렴한 농기계를 공급하는 고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지 지금 상황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사실 국내 농기계 시장이 어떠한 구조로 되어도 현실에서 저렴하게 구입해서 농민에 공급하면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중요한 현상과 문제에 대해 개선, 내지는 발전적 차원의 대응을 하는 경우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이때 각자 주관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 현상에 대해 가치판단의 결과도 다르다. 하지만 보다 포괄적이고 높은 위상의 사회적, 집단적 기준과 가치에 의한 판단 시, 즉 공통된 가치판단이 이뤄진다면 현상과 문제에 대한 합의가 용이하게 된다. 사실 국가와 농업의 차원에서 외국산 농기계에 의한 국내 시장 점유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국내산 농기계에 의한 우리 농업의 자주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명제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외국산 농기계의 국내시장 장악에 미지근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농기계 산업의 입장에서 주장이다. 농기계시장에서 농협의 위상은 수요자 독점적(시장 지배적 사업자)이고 이로 인한 단계적인 영향력이 매우 크다. 독점적 수요를 이용한 최저가 입찰 구매는 그로 인한 손실분 보전을 위한 가격인상을 야기했고, 동시에 다양한 모델, 파생상품으로 통한 가격인상을 야기했다. 그리고 이 가격은 외국산과의 차이를 좁혔고 그들의 국내 진입을 용이하게 하였다. 여기에 외국산의 대표자 격인 일본산 농기계가격할인 판매와 상대적 저가인 중국생산 제품의 수입은 지금의 결과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농협의 주장도 명확하다. 농기계 시장에서 가격과 품질, 서비스 등의 면에서 토종 기업들이 뒤지니까 나타난 결과이지 최저가 구매입찰이 중대한 원인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사태를 방치해온 농기계 산업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저렴한 가격에 의한 농기계 공급은 농협 고유의 사업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 역시 농협 입장에서 틀린 말이 아니다.
농자재산업의 자주성 확보 인식에서 대안 찾자
지금의 상황에서 국내 토종 농기계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관련이 깊은 당사자나 조직들 간에 현상과 결과에 대한 합의가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의 현상을 가져온 동인, 동기에 대해 그들이 동류의식(consciousness of kind)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류의식이란 생물학적인 존재가 다른 의식적인 존재와 자기의 의식을 동류라고 보는 의식의 상태이다. 이러한 동류의식이 있을 때 비로소 상생이며 공생이라는 것이 출발된다.
하지만 양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동인을 곰곰이 생각하고 높은 수준의 사회적 가치구현, 즉 국내 농업과 농자재 산업의 자주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통합해 보면, 동류의식을 얻을 수 있으며 대안 모색도 가능하다. 농기계 기업들의 거품적인 가격인상, 품질개발 늑장, 미지근한 산업구조조정 등을 어떻게든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면 합의점 도출이 가능하다. 농협도 최저가 입찰의 문제를 인정하고 수정·개선하면 될 것이다. 공유의 높은 지향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양측이 주장하는 바를 상호 수용하고 개선하면 된다. 하나의 최상위 목표와 관련된 동인, 동기유발에 합의하면 동류의식이 강해지고, 이는 문제해결의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와 농업발전, 자주성 확보, 토종 농기계기업의 성장과 농협의 기능 수행이라는 차원에서 허심탄회한 자기반성과 통찰이 필요하다. 확인된 동류의식과 고위 가치를 현재화하는 동기유발의 원인, 그것의 치유가 이뤄진다면 국내 농기계 시장에서 토종제품의 일정 수준 시장 몫 유지와 산업의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촉진적인 작용매체로서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가치판단이 용이한 정부와 전문 연구자의 합류와 역할도 중요하다.
지금 우리 토종 농기계 기업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국내 시장을 내줘도 수출하면 된다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이다. 서로 탓만 하다가는 머지않은 장래에 공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