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려움에 처한 토종 농기자재 산업을 선진국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농기자재산업 중장기 육성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이의 기초가 되는 관련법을 하루 빨리 제정해야 한다. 주요 3대 농자재 국내 시장이 6조 원대에 있는데 이에 대한 산업관리법조차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계화에서 각 나라와 기업간에 온정주의는 없다. 동양 인문학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인(仁)·의(義)·예(禮)·지(智)에서 나온다는 4단,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의 마음은 애당초 없다. 이익을 절대시하는 자본의 흐름, 규모와 효율성만을 지향하는 극단의 세계화 시장경제에서 경제적 승자만이, 그들에 의한 독식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에 의한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 대한 온정주의성 지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가만히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세계화를 외치지만 자신의 나라와 국민, 기업을 위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리바이던이 설치는 엄혹한 국제 현실에서 가족주의와 같은 위의 4단 지심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일부 석학들에 의해 신자유주의는 폐해가 너무 많고 결국 실패했다고 말하여지고 있지만 그 위력은 여전하다. WTO 체제 출범 이래 확대되어오는 FTA, TPP 등 국경을 제거하는 일련의 요구와 수용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 역시 각종 무역장벽을 제거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의 입장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로부터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들은 우리와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쓸 것이다.
부분적인 무역자유화조차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의 상품과 자원의 이동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용과 정도가 문제가 된다. 1997년 IMF에 의한 구제 금융수혜 시 그들은 단순하게 금융적 지원만을 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산업의 구조조정, 자본재와 지적 소유권 시장 등 광범위하게 우리 경제를 강제하였다. 국가 경영적 차원까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간섭한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실 세계화를 압박하는 그들과 국내 일부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시장개방으로 인한 이익이 이론적으로 말하는 것과 같이 크다면 왜 이리도 우리는 고민을 하고 있는가. 힘든 대비책 마련에 골몰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농업의 경우만을 봐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자립성, 자위성에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닌 우리의 미래가 더욱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산업구조조정과 기술력 강화가 해답…각계 협력 필요
지금 우리나라 주력 농기자재 산업의 성장정체와 외국산의 국내 시장 잠식이 가속화되고 있다. 주력 농기계는 조만간 50% 이상을 외국산이 차지할 전망이다. 비료는 아직은 외국산의 국내 시장 지배력이 미약하다. 하지만 원료를 전적으로 수입하기 때문에 그들에 의한 국내 시장 지배 역시 예정된 수순이다. 농약은 오리지널 원제뿐만 아니라 국내 수요량의 90%에 가까운 복제 원제까지도 수입하고 있다.
더하여 국내 토종 농기자재 기업의 규모와 기술 수준은 다국적 기업과 상당한 격차가 있다. 토종 농기자재 기업의 규모는 다국적 기업에 비해 1/5 이상 왜소하다. 농기계 생산과 설계 등의 기술 수준은 세계적 수준의 90%에는 이르렀으나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뒤쳐져 있다. 토종 농약기업들은, 나름대로 기술력을 갖고 있으나, 원제개발에 뒷걸음이다. 그나마 무기질 비료기업들의 생산기술은 나름대로 갖춰져 있다.
비관만 할 상황은 아니다. 국내 농기자재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그리고 당위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국가와 산업, 기업과 국민, 농민들이 합심해서 성공한 나라를 만든 경험이 있다. 지금 그것을 우리보다 뒤처진 나라에 전수하고 있지 않은가. 국내 농기자재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과 노력, 상호 협력과 정책 등이 뒷받침된다면 미래는 희망적이다.
지금 어려움에 처한 토종 농기자재 산업을 선진국 수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농기자재산업 중장기 육성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토종 농기자재산업은 유아수준이니 정부가 도와야 한다. 이의 기초가 되는 관련법을 하루 빨리 제정해야 한다. 주요 3대 농자재 국내 시장이 6조 원대에 이르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산업관리법조차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농기자재 육성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는 토종 국내 농기자재 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이다. 이것이 안되면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다. 체격 면에서 뒤처지기 때문이다. 체격에 더해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 즉 구조조정과 함께 선진 다국적 농기자재 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술력을 전략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산학관연의 적극적인 협력과 투신이 필요하다. 구조조정과 기술력이 선진화되면 국내 토종 농기자재산업도 선진화될 수 있다.
협소한 국내시장을 넘어서 해외로의 시장 확대를 위한 노력도 경주해야 한다. 세계 농기자재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 거대 기업들과의 싸움이 지속될 것이다. 피나는 노력이 없이는 이루지 못할 목표이다. 그러나 규모와 기술력을 확보하면서 경쟁해 가다보면 이루지 못할 바도 아니다. 중장기적 토종 농기자재 기업의 지속적 발전이 담보될 수 있는 목표이기에 수출시장은 더욱 중요하다.
농기자재 시장에서도 세계화는 진행되고 있다. 선진 다국적 농기자재 기업들은 우리가 그들을 뒤쫓아 결국 앞지를까봐 노심초사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그들은 기발한 각종 합종연횡을 통해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있는 사다리를 잘라 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자른 사다리의 마지막 부분을 붙잡고 있다. 붙잡고 올라서 그들을 앞서가느냐, 아니면 맥없이 떨어져서 영원히 뒤쳐지느냐의 운명적 순간에 있다.
국내 정치와 경제가 어지러우면서 징비록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된다. 우연히 집어든 소설 징비록(박경남 지음)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전체 내용을 꿰뚫는 요체의 두 문장이 바로 그 해답이다. “우리를 구할 곳은 우리 뿐이다”와 “준비한 사람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이다. 우리의 농기자재산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일본도 미국도 아니다. 오로지 우리 자신이다. 지금의 엄중한 상황을 알았다면 해야 할 일은 바로 준비하는 것이다.
농기계조합, 비료협회, 작물보호협회, 유기질비료조합, 상토협회 등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다. 농기자재 관련 대학교수, 농진청 등의 연구자들, 정책 관련자들의 인식전환과 대응만이 지금의 농기자재산업의 위기를 미래의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바로 지금이 최적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