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종 농기자재산업을 세계적인 기술수준까지 육성해야하는가 아니면 내버려 둬야 하느냐는 기로에 서있다. 가칭 농기자재산업육성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미래 농업에 중요한 농기자재산업과 농기자재의 미래를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온수주청와, 따뜻해지는 물속에서 조금씩 온도가 올라가다보면 개구리는 자신도 모르게 결국 죽고 만다. 의식의 마비 현상이 오는 경우, 그로 인한 위험성을 알지 못하고 그대로 망해 버리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지금 우리의 의식은 이런 상황에 빠지고 있지 않은지. 웬만한 사건은 의식세계에 도달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 하도 많이 발생하고, 그 뒤처리도 개운치 않다보니 웬만한 이야기는 귓등으로 듣는다. 정부의 민생 경제 이야기도 역시 쉽게 믿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세계화 물결이 되었고, 갈수록 세계 정치와 경제가 냉혹해지고 있지만, 맨날 보고 듣는 각종 뉴스가 문제요 절망인 지금, 엄혹한 현실에서조차 무덤덤한 생활이 대부분이다. 내가 당장 죽지 않는 한 남이야 어떻든 무관심하다. 농업과 농기자재를 둘러싼 관계자라는 부류들 역시 이러한 무덤덤함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입에 달고 다니는 상생을 위한 필요한 생각과 실천이 이뤄지고 있는지 염려가 많다.
정부에서 발간하는 수치를 가지고 우리 농업을 한번 간략하게 보자. 편의상 변화와 비교의 시기를 2000년으로 하였다. 1995년 WTO, 1997년 IMF 사태, 이후 벌어지는 FTA들의 대체적인 시발점을 2000년으로 보았다. 특별한 의미와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는 신자유주의가 국내에도 확산된 시점 정도로 보고 싶다.
1990∼2000년 농가인구는 666만명에서 403만명으로 263만명이 줄었다. 2000∼2010년에도 97만명이 줄어서 2010년 농가인구는 306만명이다. 이제(2013)는 285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1990년 60세 이상 농가인구의 전체에서의 비율은 17.8%였다. 2000년에는 무려 두배가 늘어난 33.1%, 2010년에는 41.8%, 2013년에는 47.8%로 증가하고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60세 이상의 비중은 1990년 7.6%, 2000년 11.2%, 2010년 15.9%, 2013년 17.1%이다. 고령인들의 비중 증가는 자연스러운 결과이지만 농업에서의 그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고 비중의 증가속도도 빠르다.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농업과 농촌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농업으로부터 떠나고 있다. 남은 사람들은 점점 늙어만 가고 있다.
국민총소득(GNI)을 보면 1990∼2000년 417.5조원에서 864.2조원으로 2.1배가 중가했고, 2010년에는 1266.6조원으로 10년 전에 비해 1.5배 증가했다. 2013년에는 1375.5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제의 성장과 함께 성장률은 점차 줄기 때문에 2000∼2010년의 성장크기가 그전 10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전체적인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서도 어느 정도 선방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농업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1990∼2000년 농림어업의 국민총소득은 20.6조원에서 24.7조원으로 10년간 겨우 약 20%가 증가하였다. 국가 전체의 2.1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00∼2010년 사이에도 3.6조원 증가에 그쳐 14.6% 증가에 그쳤다. 2013년에는 29.1조원으로 성장의 정체상황이다. 절대적으로, 상대적으로 농업의 성장은 작아지고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세계화 이후의 성장률 정체가 더욱 심하다.
농가소득도 1990∼2000년 가구당 연간 1103만원에서 2307만원으로 2배가 증가했었다. 하지만 2010년에는 3212만원으로 과거 10년 전에 비해 약 40% 정도 증가하였다. 2013년에는 3452만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1990년대까지 증가하던 농업소득은 2010년 1090만원을 기록한 이후 1000만원 남짓 수준에서 멈춰있다. 도시근로자 2013년 소득 5528만원에 비해 농가소득은 62.4%, 전국가구소득 4994만원에 비해 69.1%에 불과하다.
농기자재산업의 70%는 국내기업이 이끌어야 한다
인구와 소득의 구조적인 상대적 열악화와 성장정체의 농업을 지지하는 농자재 산업도 밝은 상황이 아니다. 세계화가 진행된 이후 가장 먼저 산업적 파산이 나타난 분야는 잘 알고 있는 종자산업이다. GSP 사업을 통해 반전을 기하려고 하지만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주력 농기계시장의 30∼40% 정도는 이미 외국의 농기계가 장악하고 있다. 2000년 구보다의 본격적인 한국 진출이후 일본산과 각종 외국산의 국내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농약원제의 해외의존도는 절대적이다. 국내 기업은 동부한농과 LG에서 각각 3개씩 독자 개발한 정도이다. 비료는 비록 원료를 수입하고 있지만 생산설비와 기술은 어느 정도 발전되었다. 하지만 원료보유국들에 의한 완제품생산과 설비의 확대로 인해 언제 국내 시장이 잠식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전체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국내 토종 농기자재산업을 세계적인 기술수준까지 육성해야하는가 아니면 내버려 둬야 하느냐를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일정수준 농업의 자주성 확보와 발전을 위해 토종 농기자재산업을 유치산업으로 보고 일정 기간 육성해야 한다는 쪽에 서있다. 외국산 농기자재의 국내 시장 장악과 국내 토종 기업들의 파멸은 결코 농업과 국가 경제에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농기자재 생산기반 붕괴는 농기자재의 관리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고가의 농기자재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며 국내 농기자재 산업의 기술붕괴와 고용 감축, 국내 생산의 감소 등 연쇄적인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그래서 70% 내외는 국내 기업에 의해 나머지는 수입으로 하는 농기자재시장의 구조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관련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제도가 있어야 토종 농기자재 산업 육성의 장기비전을 갖출 수 있고 각 이해당사자의 역할도 명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칭 농기자재산업육성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미래 농업에 중요한 농기자재산업과 농기자재의 미래를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어차피 모두를 육성할 수는 없기에 가장 필요한 농기자재와 품목, 기술 등에 선별적 지원의 집중을 통해 세계 수준으로 도약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농기자재계(界)에서 해야 할 일이다. 온수주청와, 약(藥)으로 마음에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