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우리의 농기자재산업이 장기적인 안정화 길로 접어드느냐 아니면 위기의 파고 속에 묻히느냐 백척간두의 시기이다. 창업이수성난()! 이제 농기자재산업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조직도 만들어진다. 농기자재산업과 정부 앞에 당태종의 고민이 던져져 있다.
2015년이 시작되었다. 농기자재산업의 입장에서 어떠한 한해가 되어야 할까.
우리나라 발전 초창기는 국가 경제성장을 위한 농업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던 시기였다. 농림부장관은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였다. 장관 서열이 1~2위가 아니었나 기억된다. 당시 보리고개가 있었던 시절이다. 배고픔에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줄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고, 공업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해야 했었다.
강력한 대통령의 후원 속에서 농림부 위상은 매우 높았었다. 농림부내에는 농기계과, 비료과와 농약과 등 농자재를 총괄하는 조직들도 있었다. 농촌의 개혁과 발전에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었었다. 당시 농업고등학교와 농과대학에서는 가장 우수한 인력들이 국가 농업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젊음을 불살랐었다. 사실 농고를 졸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학교 선생님을 뽑기도 하였었다. 그 정도로 유능한 젊은이들이 농업계에 많았었다. 지금까지 통털어 농업이 최고로 대접받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이제는 모든 면에서 농업은 늘 열등한 쪽에 서 있다. 빈부격차 문제에서도, FTA 협약과정에서 그리고 국가 불균형발전 문제에서도 늘 농업과 농촌은 없는 쪽, 봐줘야하는 쪽이 되었다. 농업과 농민들에 대한 비농업분야의 시각도 그리 따뜻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필요하면 사다먹으면 되지 뭐 그리 중하다고, 시끄럽게 구느냐는 식의 아주 높으신 분들의 푸념 아닌 푸념도 있었다. 세계 경제대국이니, 돈만 있다면 그까짓 농산물 얼마든지 사다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변화는 각 대학의 농과대학 이름이 ‘농(農)’자를 지우는, 다른 말로 바꾸는 일대 변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제는 그 따뜻한 ‘농과대학’이란 말을 찾기가 어렵다.
상황이 이러하니 농업과 농민에 목줄을 대고 있는 농자재 역시 생산비만 올리는 주범처럼 취급되었다. 늘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다. 농림부내 농자재에 관련된 관리 부서도 사라졌다. 많은 일들이 농촌 지도기능의 농촌진흥청으로 보내져 버렸다. 농업자재를 생산, 공급하는 산업은 오갈 데가 사라졌다. 농자재 정책은 일부만 유지되어오고 있을 뿐 체계적인 면은 아예 기대하기 힘든 상황으로 변해 버렸다.
양포지구(楊布之狗). 양주(楊朱) 동생 양포(楊布)가 흰 옷을 입고 나갔다가 돌아올 때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오니 기르던 개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양포는 화가 나서 개를 때리려 할 때, 형인 양주가 이야기한다. “개를 때리지 마라. 너 또한 이러할 진데, 너의 개가 나갈 때 흰색이었는데 검정 색으로 변해 돌아왔다면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느냐?” 겉모습만을 보고 마음까지도 모두 변했을 거라고 여기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농업을 지탱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농민이 잘 살려면 농자재산업을 건실하게 육성해야 한다. 아무리 겉포장을 달리해도 이 점은 불변이다.
농기자재산업과 정책을 체계화해 미래를 준비하자
서자(庶子)취급의 농자재업계가, 농자재 정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농자재산업과 최첨단 기술, 그리고 그것이 체화된 각종 첨단 농자재가 아니면 정부가 주창하는 6차산업화는 공염불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농자재의 의미를 이제야 알았다면 천만다행이다. 정부 쪽의 노력으로 농림축산식품부 내에 어렵게 ‘농기자재정책팀’이 만들어지게 됐다. 또 다른 격세지감이다. 참으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직도 진정 중요한 것이 뭔지 모르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농자재를 총괄하는 부서가 다시 농식품부에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해야 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농자재산업과 농자재 정책들을 모아야 하고, 재정리해야 한다. 급변하는 여건변화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보내온 시절로 인해 벌어진 다양한 문제들을 고쳐 헤아리고, 정리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서두를 일은 아니다. 농자재산업과 농자재 정책을 차분히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2015년! 국내 농자재산업은 몇 가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첫째, 국내 농자재 시장의 축소는 2000년대 이후 목격되어오는 추세이다. 세계적인 성장과 달리 국내 시장은 정체 내지는 축소의 길을 걸을 것이다. 둘째, 엎친데 덮친 꼴이라고 외국 농자재기업들은 국내 시장진출과 확대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다. 종자시장을 내준 결과가 지금 농기계에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셋째, 농자재 유통에서 농협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율적 시장형성이 어려워질 것이다. 공정거래법에서의 우호적인 법변경은 더욱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자칫 이것은 국내 기업의 고사와도 연계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네 번째, 갈수록 환경적인 요소에 대한 국내외적인 요구가 강해져서 이에 대한 대응이 미진할 경우 3류 4류 기업으로 뒤쳐질 것이다. 앞의 3가지 요인에 의해 국내 기업들의 대처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농자재산업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부족하다.
천하를 통일한 불세출의 영웅 당태종이 어느 날 개국과 치국의 공신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당태종이 충신들에게 묻는다. “창업과 수성 어느 편이 어려운가?” 천하통일의 전략을 총괄한 방현령은 창업 초기 군웅할거 난적들과의 쟁패에서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다.
반면 개국 이후 나라의 안정화에 주력해온 위징은 제왕은 창업 후 자칫 마음이 해이해져서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로 인해 세금을 과하게 부과하는 등 나라의 안정화를 소홀히 하게 되면 결국 나라가 망할 것이기에 수성이 더 어렵다고 고한다. 사실 어느 것 하나 쉽겠는가. 태종은 가만히 듣고 난 후, 이렇게 말한다. “돌아보니 창업의 어려움은 다 지나갔다. 그러니 앞으로는 경들과 함께 명심해서 수성의 어려움들을 뚫고 나가고 싶다.”
2015년! 농기자재산업이 장기적인 안정화 길로 접어드느냐 아니면 위기의 파고 속에 묻히느냐 백척간두의 시기이다. 창업이수성난()! 이제 농기자재산업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조직도 만들어진다. 농기자재산업과 정부 앞에 당태종의 고민이 던져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