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밭농사를 기계화해야 하는 당위성을 세워야 한다. 수시로 정책의 목표가 바뀌게 되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정부의 인내하는 지원이 필요한 밭농사의 기계화 정책이 일관성을 갖고 추진되기 어렵다.
농사일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힘들다. 인간들이 각종 도구를 만들어 사용해온 이유다. 이 농사일을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존해 온 역사가 짧지 않다. 장소에 고정해서 사용하는 각종 기계들을 통해 산업혁명이 이뤄졌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원하는 작업을 하는 기계를 개발하게 되고 이것은 지금의 ‘기계’라는 의미를 구축한다. 자체동력원을 가지고, 이동하면서 작업할 수 있는 것으로 기계를 규정하곤 한다. 용도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게 지어졌다. 지금의 중요한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이 바로 농업에 사용하는 기계, 즉 농기계이다.
지금 우리 농업에서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을 제외하고는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들은 주로 쌀농사의 농작업에 이용되고 있다. 주곡인 쌀이 중요했기에 우리 정부는 쌀 산업의 생산유지, 내지는 생산증대를 위해 노력해 왔다. 농촌으로부터의 대규모 인력유출에 대응하고, 생산비도 줄여야 하는 데 아주 긴요한 도구로서 농기계가 공급, 사용되어 왔다. 쌀 생산의 기계화가 괄목할만한 정도로 이뤄졌다고 자부하는 것은 정부의 노력이 크다. 미래에는 지금의 내용과 모습이 많이 다른 로봇화된 농기계가 출현하겠지만 어쨌든 지금 쌀농사의 기계화는 거의 이뤄졌다.
쌀농사의 기계화와 달리 밭농사의 기계화는 미흡하다. 밭에서 나오는 다양한 농작물도 쌀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농산물이다. 콩, 고추와 마늘, 배추와 무, 양파 등 다양한 농산물이 밭에서 생산된다. 이러한 밭작물의 생산에서 우리가 원하는 작업을 해줄 농기계를 원하고 있다. 외국과의 자유무역이 확대되면서 국내 밭작물의 존립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데 필요한, 생산성도 높이고 비용도 줄이는 농기계가 필요하다. 밭작업의 기계화 정책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정부와 관련기관 여러 사람들이 이 부분을 위해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밭작물의 기계화를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이 좋다. 늦었다고 서두르다 보면 소홀한 부분이 많아질 수 있다. 과거 우리는 상당히 성공적인, 개발도상국에 소개할 정도로 좋은 정책과 농업 기계화 경험을 갖고 있다. 참고해서 밭작물의 기계화를 추진하면 시행착오를 그만큼 줄일 수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 미흡한 점이 있다고 여긴다면 이웃 일본이나 독일 등의 나라에서 실행해왔던, 실행하고 있는 경험을 잘 살펴서 활용하면 된다. 그럼에도 몇 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전략을 세울 때 참고가 될 만한 것으로 생각한다.
공통 사용이 가능한 농기계를 우선적으로 공급
첫 번째 밭농사를 기계화해야 하는 당위성을 세워야 한다. 수시로 정책의 목표가 바뀌게 되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정부의 인내하는 지원이 필요한 밭농사의 기계화 정책이 일관성을 갖고 추진되기 어렵다. 분명한 목적과 목적을 지지하는 당위성이 우리 모두에 공동의 선으로 확고해지는 만큼 밭농사 기계화의 성공가능성이 많아진다.
두 번째 기계화 대상 작물과 농작업을 사전에 선정해야 한다. 밭에서 재배되는 작물, 해당작업은 수백가지이다. 재배하는 모든 농민들은 자신의 작목을 위한 기계화 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허나 이 모두를 정책의 대상으로 지원할 수는 없다. 기계라는 것은 일정한 규모를 전제할 때 효율적이고 지속이 가능하다. 작물별 재배면적과 집적화 정도 등을 조사해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세 번째 기계화 대상의 작물간 농작업을 분석하고, 공통으로 사용이 가능한 농기계를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효율화를 지향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기존의 농기계를 이용가능한 부분과 공통으로 이용가능한 부분으로 가려내서 공통부분을 우선적으로 기계화하는 것이다. 범용화 가능 기계로 농작업을 기계화하는 것, 분명 비용 절감적이다.
네 번째 농기계 개발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과 같은 소규모 시장을 전제한 밭작물 농기계의 기업에 의한 개발은 사실상 기대하기는 어렵다. 과거 논농사를 전제한 경우에도 이러한 문제 때문에 농기계 기업에 개발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정부의 공급지원도 결국 이를 통한 기술개발을 유인하는데 일조를 해왔다. 우리에게 일본의 농기계 개발정책인 ‘긴프로’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부분에 관련하여 현재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내 농업공학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다섯 번째 농기계와 작물재배체계를 일치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재배방법에 농기계를, 어떤 경우에는 농기계에 재배방법을 일치시키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재배방법과 개발 농기계간에 부조화가 일어나면 농업기계화는 지체 내지는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배양식의 표준화인데 농학자들의 자문이 중요하다.
여섯 번째 공급방법을 미리 정리해 놓아야 한다. 개인소유와 이용, 공동소유와 이용, 임작업과 임대(은행)방안 등을 밭작물 기계화의 특성과 연계해서 연차별로 조직화해야 한다. 현재 많은 밭작물의 경우 작목반의 경영이 눈에 띈다.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집단적 이용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차원에서 일본의 리스제도, 독일의 농기계은행이나 WBL제도를 검토하다보면 좋은 방안이 나올 것이다. 물론 지금 국내에서 이뤄지는 농기계 이용방법도 참고가 될 것이다.
일곱 번째 밭작물 기계화 요소들을 시차적으로, 단계적으로 이뤄나가는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 과거 우리의 기계화 5개년 계획을 밭작물에 국한해서 만드는 것이다. 정책의 목표와 수단, 방법 등을 연차적으로 정리해서 활용함으로써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차별 전략(Master Plan)이 마련되지 않으면 정부가,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변경되거나 폐기될 수도 있다. 종합적인 전략수립이 중요한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소기의 밭작물 기계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조직과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 주체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주변의 지원이 없으면 밭작물의 기계화는 어렵다. 재배 전문가와 농기계 개발 전문가, 정책 전문가와 해당 농민, 생산자 조직체 등의 합심이 가장 주요한 정책 성공의 요소임을 인식하고 상호 협력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운용중인 농식품부의 관련 TF 팀의 활동에 많은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