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종 대표가 아버님을 도와 농약사 일을 시작한 것은 1963년이다.
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했던 아버지가 퇴직 후 그간의 농업상담 경험을 살려 농약사 농사원을 차리셨고 부족한 일손을 돕다가 자연스레 사업체를 물려받게 됐다.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점차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병충해가 있을 때 어떤 약을 처방하느냐에 따라 그해 농사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농사짓는 분들과 함께 울고 웃다보니 50년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그의 곁에는 “42년의 시간을 남편과 같이 했다”고 덧붙이는 든든한 아내 최봉자 씨와 일찌감치 후계자 수업을 받기 시작한 아들 영준 씨가 있다. 농약사 업무가 워낙 세심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가족들이 함께 나서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내의 바지런함이 지금의 농사원을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면, 아들 영준 씨는 미래 농촌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농사원을 만들어가야 하는 책무가 있다.
병해충 방제가 수확량 결정…농약사 역할 중요
유 대표는 농업인들과 오랜 시간 애환을 나누며 농약사의 업무가 농사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이나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작물보호제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기업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삼위일체론’을 펼친다.
“기업이 좋은 약제를 개발하면, 농약사가 이를 잘 파악하고 올바른 처방을 통해 농업인에게 전달하고, 농업인들이 병해충 방제를 잘해 농산물의 품질과 수확량을 높이는 삼위일체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농업인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 끝에 농약사 건물 2층에 넓은 강의실을 마련했다. 그리고 농업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병해충의 특성과 방제 방법에 대한 강의를 열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용 스크린과 빔 프로젝터를 설치했고 강의용 PPT를 직접 준비해 강단에 선다.
농약사만큼 인기있는 강의실, 농민 사랑 독차지
처음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지 자신할 수 없었지만 농업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잘 몰라서 답답했던 농작물 병해충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사진을 통해 쉽게 전달해주니 막혔던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라는 것이 강의를 들은 농업인들의 소감이다.
특히 까다로운 농작물의 병리와 약 성분, 정확한 농약과 비료 사용법, 다양한 사례 등을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콕콕 짚어주니 당장 농사에 응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강의 후에는 조촐한 음식과 막걸리를 앞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농사원 강의날은 이제 해남읍 주민들 사이에서 특별한 날로 자리 잡았다.
유 대표는 지역의 농약사가 과학영농이 이뤄지는 데 실질적인 중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농업인과 함께 농사를 고민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농사원이 해남 농업인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