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농정과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을 곱씹을 일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최상위 지향 가치는 “농민들이 행복하고 활력이 넘치는 농촌”이라 해야 할 것이다. 농민이 잘 사는 농정이 모색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들어설 정부에서는 나름대로의 국정 철학에 기초해 농업분야가 가야할 방향과 정책들을 정비하고 있다. 어느 정부든 국정에서 내걸고 있는 최고의 가치는 “국민들의 행복과 국가의 안정”이다. 비슷하게 말을 바꿀 수는 있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현 정부에서 우리 국민들은 기대하는 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패한 정부라고 여·야 모두 대통령선거에서 지적했다. 현 정부에서 실행했던 많은 정책들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공통의 지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니 기대가 남다르다. 갈수록 농업과 농민, 농촌은 작아지고 쭈그러지고, 늙고 황폐해지는 것 같아 매년 연말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우울했었다. 한해 우리 농업은 건재한 것인가? 농민들의 얼굴은 쫘~악 펴지고 있는가? 농촌에 활력이 넘치지는 못하더라도 조그마한 변화의 기미라도 보이는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농민들의 국정에서의 위상은 무엇인가? 되뇌이며 그래도 희망을 갖고 싶다.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는 한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정이 모두 문제라는 입장은 아니다. 우리끼리는 나름대로 제한된 자원, 정보, 재정 등을 활용해 열심히 노력해 왔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좋은 성과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농민들의 어깨는 무겁다. 활력이 넘치는 농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것이 문제이다. 국정 가치처럼 “농민들이 행복하고 활력이 넘치는 농촌”을 지향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으니 새로운 농정과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을 곱씹을 일이다. 이전 정부의 많은 정책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 냈기에 문제가 무엇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고 본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최상위 지향 가치는 “농민들이 행복하고 활력이 넘치는 농촌”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렇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력제고, 수출확대는 가치실현의 소과제일 뿐이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지향가치를 이루는데 동원되는 수단과 방법이다. “어떻게 하자”는, 바로 그것을 잘 구상하고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모든 농업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는 농민이 첫째이고 농촌이 두 번째여야 한다. 농민이 잘 사는 농정이 모색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정책대상과 내용을 정리해 본다.
‘농민’이 첫 번째요 ‘농촌’이 두 번째가 되는 농정 이뤄야
새로운 농정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대상은 농업소득 증대이다. 자고로 농업이란 농산물을 생산하고, 농민이란 이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먹고 마시는 것을 자연과 더불어 만들어 내는 사람의 주업인 농업, 그것을 통한 소득이 농민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농업소득만으로 어느 정도 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직업으로서 자부심도 갖게 되고, 국민들에게 좋은 농산물을 제공하는 보람도 느낄 수 있다.
원천적인 농업소득의 불안정을 완화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 농업은 자연환경과의 조화 속에서 유지, 발전된다. 아무리 자연조건을 극복하려 해도 한계가 있다. 농산물 생산에 있어서 불안정성은 농산물 생산량과 농업소득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 매년 반복되는 이러한 불안정성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생산과 가격에 관련된 보험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농민들이 열심히 지은 농사의 적정한 대가를 얻을 수 있는 농산물 유통체계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중간상인들이 취하는 이득이 너무 많다는 지적과 최종 소비자 가격의 통제 애로가 지적된 역사는 수십년이다. 여전히 문제라면 지금의 농산물 유통시스템을 완전 뒤바꿔야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대량유통이 아닌 소량의 분산된 유통을, 유통상인이 중심이 아닌 농민이 중심이 되는 유통이 되도록 정책을 일대 혁신해야 한다.
부족한 농업소득을 보완할 수 있는 농외소득 정책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불제에 의한 농업소득의 보완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농촌에는 직업적으로 농외취업을 통해 농외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인적 구성, 관련 산업의 취업 조건 등을 보면 이것이 어렵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과거 가내 수공업적인 단순작업의 기회도 이제는 많지 않으며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도시지역의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농산물 생산비용을 줄이고 소득을 올리는데 중요한 농산물 생산과 유통기술 개발에 대한 체계적인 R&D 지원이 필요하다. 농산물 생산단계에서는 다양한 저가의 고품질 기자재 개발과 공급이 필수적인 요소다. 전통적인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첨단, 생명농업의 구현에 필요한 IT와 BT 기술개발이 지원돼야 한다. 여러 부처로 분산된 이러한 기술개발 관련 연구관리도 어느 한 곳으로 체계화해서 지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어차피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농업인으로서 소득이 보장된 이후에는 농촌 생활의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면 된다. 직업인으로서, 사람으로서 보통 정도의 생활이 중요한데 농업인들의 소득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농촌생활의 안전망을 시스템적으로 구축하고, 편리하고 안전한 기초 주거공간의 확보를 우선해야 한다. 교육과 의료, 사회 서비스 여건 조성은 결국 농촌에 사람이 살도록 하는 인프라로 작용할 것이다. 사람이 살 만하면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농촌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농업인 후계자 문제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농업을 기후변화에 대응한 순환적인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장 초보적인 순환 시스템은 원시 수렵이다. 점차 산업화 과정에서 순환보다는 직선적 생산과 자원의 이용이 대세로 되었는데, 결국 이것이 지금의 자원과 환경문제의 중심 요인이 되고 있다. 최소자원을 사용하면서 자연에 최소부담을 주는, 그러면서도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새로운 농업생산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일시에 전부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절대 안되는 길이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농민이 행복해야 농촌이 산다. 농촌이 멋있다고, 살아 있다고 농민이 행복하지는 않다. 과거에 반복된 잘못을 반복할까 걱정이 되는 것은 여전히 이러한 가치체계의 혼란 속에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먹거리를 책임지는 직업인으로서 농민들이 행복한 새로운 농정을 기대한다. 그러한 새 농정은 과거와 다른 혁신적인 사고와 농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이 점을 명심하길 새 정부에 간곡하게 당부한다. 아울러 계사(癸巳)년 새해 농어민 여러분의 가정에 평화가 가득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