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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농민, 농촌을 사랑하자!

뉴스관리자 기자  2012.09.04 1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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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죽기로 해 금메달을 땄다”고 말한 김재범 선수. 우리는 언제 한번 죽기 살기로 우리 농업과 농민, 농촌을 사랑해 본 적이 있나? 경제논리만으로 농업과 농민의 살길을 찾기는 어렵다. 올 가을에는 3농,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걸쭉한 농민사랑 타령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으면 좋겠다.

‘2012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 대표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조그만 나라에서 이렇듯 세계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다.

수많은 선수들 중에서 대표 선수로 뽑혀 험난한 훈련과정을 마치고 결전에서 세계 최고가 된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멋지던지….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우승한 선수들, 아깝게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 주위에 맴돈다. 어찌되었든 그들의 노고는 치하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김재범 선수의 말은 회자된 여러 이야기들 중에 압도적이었다. “베이징에선 죽기 살기로 해 은메달을 땄고, 이번엔 죽기로 해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이 뭐길래 죽기로 했을까.

선수의 최고 가치이자 인생의 가장 고귀한 목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전부였기에 모두를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뤘다. 그러나 똑같은 목표를 두고 똑같이 죽기를 각오한 선수들의 대부분은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살아가야할 이유가 없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김재범 선수가 더 아름답게 보인 것은 일반인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석에서의 인터뷰 내용 때문이다. 결승전에서 독일의 비숍 선수와 경기 후에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물었더니, 김재범 선수는 “너도 챔피언이고 나도 챔피언이다. 우리 모두 챔피언이다”라고 했단다.

메달 획득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히 연습해온 너도 스스로에게 챔피언이란 말이다. 비록 게임에서 져서 은메달을 얻었지만 너 역시 훌륭한 챔피언이라는 참으로 멋진 생각과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던 기대의 무게가 아마도 바벨의 무게보다 더했을 장미란 선수의 퇴장은 너무 아름다웠다. 바벨을 떨어뜨리고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바벨에 손 키스를 한 이유를 그녀는 “뚱뚱하고 못생긴 내가 많은 분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역도라는 종목을 통해서였다.

그런 마음에서 저절로 그런 행동이 나온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의식적인 건 아니었다. 다만 역기와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마음속에 같이 살아가는 훈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말이 절대 과장은 아니라는 확신이 선다.

우리 선수들의 힘들었을 시간들을 상상하면서 문득 우리에게 익숙한 노자병법(吳子兵法)에서의 한 글귀가 떠올랐다. …必死則生,幸生則死…. 동시에 이순신 장군의 명언 중의 하나인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구절도 되새기게 된다.

뭔가를 이루기 위한, 요행을 바라지 않는 죽기의 노력과 힘씀의 결과는 성취라는 말이다. 성경 요한복음(12장)에서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라는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설파하고 있다.

규모나 사회적 중요성 면에서 농업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예산도 감소하고 있다. 대저 국가 차원의 중요도를 가늠하는 예산 배정에서 밀린다는 느낌이다.

강소농, 가족농, 영농법인, 들녘별 경영체 등 여러 정책들이 전개되어 왔지만 축소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의 기초적인 먹거리 자급률만이라도 법적으로 강제하려 해도 이 또한 언감생심이다.

무역자유화라는 거대 흐름 속에서 땅도 적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뒤지는 우리 농업이 금메달 획득마냥 세계에 우뚝 솟아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비관적인 부류에서는 이제 우리 농업은 죽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불현듯 올림픽 선수들의 이야기와 병법, 이순신 장군, 성서의 구절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
‘그렇다면 과연 우리 농업이 죽어야 진정 사는 걸까?’ 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암담한 마음에서 조금은 반동적인 생각이 일었다.

주변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분명한 것은, 농업이 당면한 지금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농업, 농민, 농촌(3농)을 살리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속에서 여전히 농업은 희망적 미래를 보고 있다.

그들은 죽기로 우리의 3농을 위해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 진정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히 하면 농업을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죽기로 열심히 움직이도록 채근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적당히 살지 않고 고난을 감수하도록 만든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3농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닐까. 이것이 그들 마음속에서 용트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과 농민, 농촌을 사지에서 구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사랑’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죽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서라도 고귀한 가치를 지키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는 부모는 자식을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것은 이 나라와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김재범 선수는 유도를, 장미란 선수의 종교의식과 같은 쓰다듬는 자세는 역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 독립투사들도 조국을 자신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먼저 세상을 등진 농민열사들도 죽도록 우리 농업과 농민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답답한 험로에서 찾은 답은 ‘이 나라 국민들이 농업과 농민을 사랑하면 우리 농업과 농촌, 농민은 산다’이다. 죽기로 사랑했는데도 농업이 죽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언제 한번 죽기 살기로 우리 농업과 농민, 농촌을 사랑해 본 적이 있나? 이제라도 우리는 농민과 농업을 더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 모두는 농업과 농촌, 농민과 함께 잘 살 수 있다. 상생(相生)을 넘는 공생(共生)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출발하면 복잡다단한 분야의 문제들도 풀린다. 이것은 경제상황으로만 보는 어리석은 시각과는 대단히 다른 것이다.

사실 신자유주의 논리 하에서 우리 농업과 농민의 살길을 찾기는 어렵다. 어차피 물신(物神)사상에서 벗어나야 해답이 나온다. 올 가을에는 3농,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걸쭉한 농민사랑 타령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