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아일보(2011.7.19)에는 “젊은 후계 농업경영인 어디 없소?”라는 제하에 임우선 기자가 쓴 글이 게재되었다. 분명 농업정책을 개발하는 정책가도, 그렇다고 연구자도 아닌 그가 쓴 글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우울할 뿐이다. 글의 내용이 우울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진단하는 문제는 정확하고 명료한데도 왜 대응하는 정책은 미흡한지를 이해하기 어려워 우울하다는 이야기이다. 그의 이야기를 간추려 보자. 후계농업인 선정은 18~45세 농업전공자 또는 농업관련교육 이수자로 영농경력 10년 이하이다. 정부는 후계농업인에 최대 2억원의 창업자금을 융자하고, 5년 뒤에도 계속 농사를 지으면 8000만원을 추가 지원해 준다. 군 생활도 면제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파격적인”지원에도 불구하고 “정작 젊은이들은 관심이 없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농업을 외면하는 이유는 언젠가부터 농사는 죽어라고 고생해도 할수록 적자이고, 지원금을 받아야 간신히 버티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의 이유는 농촌에는 미용실도, 영화관도 커피숍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농촌을 망가진 채로 방치하는 사이 우리 농촌에는 노인들만 남았다.” 농사를 지어서 살만하면, 그리고 농촌에도 사회문화 인프라가 도시지역과 같이 잘 정비되어 있으면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 농촌이 망가지지 않을 것이며 노인과 젊은이들이 함께 사는 공간이 될 것이라는 역설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바람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2003~2010년 사이 도시근로자 가구당 소득은 3528만원에서 4809만2000원으로 136.3% 증가하였다. 반면 농가소득은 같은 기간 2687만8000원에서 3212만1000원으로 119.5% 증가하였다. 절대금액의 차이도 2003년 840만2000원에서 1597만1000원으로 벌어지고 있고 이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같은 기간 농업소득만을 보면 1057만2000원에서 1009만8000원으로 오히려 감소하였다. 논벼농가만을 뽑아서 농가소득을 계산해 보니 2186만8000원에서 2062만8000원으로 0.8%가 줄었다. 사정이 이러한데 어찌 젊은이들이 농사를 짓겠나. 두 번째 조건인 농촌지역의 사회문화적인 인프라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도시에는 있지만 농촌에는 없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 규모나 질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물가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정된 물가는 매우 중요한 국가 정책이다. 그 자체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지 않은 언론과 방송매체에서는 농산물이 물가의 주범인양 떠들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우 한 마리 팔면 100만원 손해(세계일보, 2011.7.19)본 것은 농민의 상황이고, 산지 출하가격이 곤두박질해도 최종 소비자가격은 요지부동인 것은 유통업자의 상황인 점은 왜 경시되고 있을까. “생활물가의 억제는 유통혁신으로”(파이낸셜 뉴스, 7.21)란 사설이 본질을 설명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17년 전에 비할 경우 주요 농산물 가격의 인상률은 67%이지만 소득 증가는 세배 정도이니 크게 오르지 않았다고 한 일간지에서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중앙일보. 7.20). 물가의 주범은 전세금, 대출금, 통신비, 사교육비 등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데, 여전히 일반 국민들은 농산물에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본질을 알고 잘 가려서 대응해야하는데 그저 싸잡아 물가를 논하고 있으니 농민들은 답답할 뿐이다. 절친한 대학교수 친구가 “재산 다 팔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라도 해야 할런가 싶다.”라고 전화로 푸념을 하더니, 급기야 “지금 내리는 빗물은 농민들의 눈물처럼 느껴지는구먼~~”이라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현장을 누비면서 누구보다 농민과 농업문제를 끌어안고 개선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한 교수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암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노력하면 희망은 있지 않을까 말하고, 그리고 믿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 배가 아프면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손바닥으로 배를 문지르면서 “배가 낫는다!~, 내 손은 약손!~…”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아무 약도 바르지 않았고, 먹지도 않았는데도 웬만한 배앓이는 나은 기억도 있다. 의학에서 이야기하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다. ‘플라시보’란 ‘마음에 들도록 한다’는 뜻의 라틴어이다. 가짜 약을 의미한다. 만성질환 혹은 심리상태에 영향을 받기 쉬운 질환에서 가짜 약을 투여해도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플라시보 효과’라 한다. 여기에는 대상자의 강력한 믿음이 내재한다. 농정에서도 이러한 효과가 있다면 그만큼 농민들은 농정을 신뢰한다는 이야기이다. “강소농”이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 양 이곳저곳에서 회자되고 있다. 경쟁력을 강화하면 개방농정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구조 개선을 통한 대농경영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참 오랜 시간속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그렇다고 작은 것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농업에 할 수 있을까, 강하다고 농민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한국 사회에서 가족농일 수밖에 없다고 하면 어떨지. 그리고 농업정책으로는 어려우니 농어촌정책으로 대응하자는 접근의 전환이 오히려 현실을 반영한 방안이 아닌지. 돌아오는 농어촌, 스마일 농어촌이 되기 위한 기본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진정성이 없으면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인 노시보(nocebo)효과가 판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 염려되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