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 치킨에 이어 통큰 갈비가 롯데마트에서 출시되었다. 작년 12월 대형마트 가운데 하나인 롯데에서 1만2000원 이상인 시중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000원에 전격 판매하였다. 아마 그런 장사진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수 시간을 기다리는 소비자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이리도 우리 국민들은 치킨에 목말랐단 말인가. 한동안 세간을 시끄럽게 만든 통큰 치킨의 판매는 중단되었다. 통 큰 치킨을 둘러싸고, 다른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커다란 줄기로 보면 두 가지 의견이 대두되었다. 하나는 시장시스템에 맡겨야한다는 주장이다. 시장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가격은 결정되는 것이니 5000원에 팔든, 6000원에 팔 든 무슨 문제인가라는 것이다. 소비자 앞에 질 좋고 값도 저렴한 선택이 주어진 것인데 무엇이 잘못인가라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영세자영업자들의 생존권까지 위협한다면 사회정의는 어찌될 것인가라는 주장이다. 공정한 사회, 소통하는 사회를 부르짖으면서 그래서 사회갈등을 줄이고 사회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이 웬 행위란 말인가. 힘이 약한 자와 강한 자의 시장에서의 부딪힘은 약자의 파멸로 이어진다. 이 약자들이 살수 없는 사회가 과연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인가. 상(商)도리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다. 이번에는 통 큰 갈비가 나왔다. 통 큰 치킨을 맘먹은 대로 팔지 못하고 판매를 중단한 것에 대한 분풀이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어찌되었든 통 큰 세일이 세간의 집중을 받고 있다. 미국산 갈비와 한우, 돼지고기에 대한 통 큰 판매가 몇몇 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선전되고 있다.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라는 지적과 함께 축산농가들과 많은 사람들은 구제역으로 온 나라가 비상사태이고 고통이 극에 달한 지금 하필이면 그 소와 돼지고기를 대상으로 하는가에 대한 강한 비판이 있다. 사실 노이즈 마케팅의 경우 일시적으로 소비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길게 보면 결국 상호간 신뢰를 깨뜨리게 되고 결국 소비자들이 불신만 조장할 가능성이 많다. 특히 이것을 미끼로 활용할 경우 더욱 그렇다. 롯데마트의 통 큰 세일과 구제역 창궐, 그로 인한 고난의 세월을 보면서 자본의 무서움과 경영진의 비정상적인 상행위가 얼마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신문에 게재한 내용대로 “물가? 롯데마트 통 큰 가격이 잡겠습니다!”라는 말을 믿고, 묻고 싶다. 지금 롯데의 수익은 어찌 형성해 왔는가. 단순히 구입가격과 판매가격의 차이를 이득으로 취했고 그것이 결국 지금의 회사와 경영주의 재산이 아닌가. 그렇다면 진정 물가를 잡고 싶다면 구입원가와 판매가를 공개하고 적정하다고 인정하는 이익만을 취하는 것이 “통큰 가격, 통큰 경영”이 아닌가? 그래야 진정 물가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힘없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하지 말고 대기업 삼성이나 LIG 등의 상품을 대량, 상시적으로 최소원가로 판매하면 진짜 물가를 잡는 것이 아닌가? ‘허생전’에 지금의 상황에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 가운데 몇 가지만 곱씹고 싶다. 허생은 비록 공부하는 유학자이나 상업에도 능통하여 독과점을 통해 재산을 모은다. 그러나 분명 그는 그것이 잘못이란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돈을 새로운 유토피아건설에 투자한다. 개인의 재산축적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는 자칫 큰돈으로 국가 물가의 문제(자신의 매점매석과 같은 행위)가 발생할까 염려하여 50만냥을 물속에 버린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전히 치자(治者)로서 덕(德)을 강조한다. 돈과 사적인 부의 축적이 아닌 덕업상권(德業相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통 큰 판매를 보면서 책임 있는 사회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얻고 유지한다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생과 같은 덕을 갖춘, 존경하고 싶은 사회지도자가 절실하게 그리운 것은 지금의 국가적인 어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