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적격 여부 ‘부상’··· 대체제 모색 서둘러야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꿀벌 독성 등 안전성 논란으로 유럽 국가들의 사용 금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농약 안전성 관리 기준이 EU의 기준에 따라가는 기조로 우리나라도 이 같은 기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1700억원 대의 시장을 이루고 있는 국내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시장도 대체 물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사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내용은 이미 알려져 왔다. 네오니코티노이드 계통의 농약이 우려의 대상이 된지 오래된 것이다. 다만 이 계통 농약의 장점이 워낙 강하다는 점, 고독성 농약 폐지 등 더 큰 이슈에 가려 수면 위로 부각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벨기엘 브뤼셀무역관이 최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EU식품안전청이 꿀벌 폐사의 주원인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지목하고 급독성 영향을 밝혔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저독성 농약(WTO 분류방법에 의거)으로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일컬어지는 신경작용 합성물질이다. 이 계통에 속하는 살충 원제로는 클로티아니딘, 이미다클로프리드, 티아클로프리드, 디노테푸란, 아세트아미프리드, 니텐피람 및 티아메톡삼 등이 있다.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는 저독성 농약이기 때문에 독한 냄새가 없어 90년대 이후부터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돼 왔다. 특히 이미다클로프리드 살충제는 120개국에서 140가지 작물에 사용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러나 90년대부터 꾸준히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농업에 큰 타격을 준 꿀벌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의 원인을 놓고 질병과 기생충, 야생 꽃의 종 다양성 감소, 농약 등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네오니코티노이드도 강한 의혹의 대상이 돼 왔다.
영국·프랑스 등 꿀벌 영향 입증 연구 발표
2012년 3월 이탈리아 연구진은 네오니코티노이드 농약의 종자처리기술이 꿀벌의 집단폐사를 일으킨다는 연구를 Environmental Science &Technology 연구지에 발표했다. 또 영국 스털링 대학 연구진도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인 이미다클로프리드가 꿀벌의 출생률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조사를 발표해 환경부에 제출했다.
영국 방송과 BBC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 연구팀들은 네오니코티노이드계통 살충제가 여왕벌 수를 85% 감소시키고 꿀벌들의 길 찾는 능력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를 2012년 3월에 사이언스지에 각각 발표했다.
영국 스털링대 연구진은 이 농약이 함유된 꽃가루와 설탕물을 땅벌 군집에 먹인 결과 6주후 체중이 정상적 군집에 비해 8~12%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농약을 먹은 벌들이 먹이를 적게 수확했다는 의미다. 또 정상적인 벌 군집에서는 평균 14마리의 여왕벌이 탄생한 데 비해 농약에 노출된 집단에서는 단 2마리가 태어나는 데 그쳤다.
또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INRA) 연구팀은 추적장치가 부착된 꿀벌들을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성분인 티아메톡삼에 노출시킨 결과 집 밖에서 죽는 확률이 2~3배나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를 벌들이 방향찾기 능력을 잃은 결과로 해석했다. 연구진은 이와 함께 벌들이 집을 찾지 못해 죽을 경우 벌 군집이 회복하기 어려운 정도까지 개체수가 줄어든다는 사실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입증했다.
2010년부터 유출율 최소화하도록 규정
이들은 농약에 노출된 벌 개체수가 “단 몇 주 안에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남은 벌들도 기생충이나 기후변화등에 더욱 취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농약 제조회사들이 꿀벌 치사량을 결정하면서 집 찾기 능력 손상 등을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농약 안전성 기준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농약을 50년 이상 써 왔으면 이제 단일 화합물의 남용이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님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런데도 병해충 위험이 없는 경우에조차 종자에 농약처리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이 연구가 진행되기 전 2010년부터 클로티아니딘, 이마다클로프리드, 티아클로프리드 등에 관한 특별 조항인 2010/21/EU Directive에 의해 이미 세 물질은 파종 전 옥수수나 콩 등 종자처리에만 사용하도록 제한시켰으며 대기먼지 방출비율과 유출률을 최소화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처럼 잇달아 네오티코티노이계 농약이 벌들의 집단폐사, 꿀벌들의 방향 능력 상실에 영향을 끼쳐 벌 개체 수 감소를 유발한다는 연구가 발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 함유 살충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EU식약청, 단계적 사용 금지 권고
이에 따라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4월 네오니코노이드 계통인 클로티아니딘, 이마다클로프리드, 티아클로프리드의 사용이 곡물에 미치는 영향, 벌의 성장과 생태계에 미치는 만성적 영향, 벌의 유충과 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이 3가지 물질을 반치사량으로 복용했을 때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를 식품안전청(EFSA)에 요청했다.
지난 1월 16일 EU식품안전청은 네오니코티노이드 사용이 지난 1990년대 초부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농업에 큰 타격을 준 꿀벌 폐사의 주 요인이며, 꿀벌에 강한 급독성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 아주 적은 양의 네오니코티노이드 노출도 벌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그동안 의혹만 제기되던 네오니코티노이드의 아치사(sublethal) 효과를 밝혔다.
EU식품안전청은 이에 따라 EU집행위원회에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살충제 성분에 대한 규제 내용을 담은 Regulation EC No 1107/2009에 네오니코티노이드 관련 조항을 강화해야 하며 단계적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 사용을 금지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나섰다.
EU집행위원회는 EU식품안전청의 보고서를 근거로 네오니코티노이드 관련 조항 적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이탈리아 종자처리기술에 사용 금지
이 같은 흐름과 더불어 이미 프랑스에서는 현재 종자처리기술과 작물에 대한 이미다클로프리드 사용이 잠정 중지된 상태이다. 또 꿀벌 개체수 보호를 위해 모든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및 페닐피라졸계 농약에 대한 사용금지 법안을 지난해 10월 29일 프랑스 국회에 제출했다.
또 독일은 클로티아니딘을 옥수수 종자처리기술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미 모든 종류의 종자처리기술에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영국정부는 2012년 초 이 금지법안 요구를 거절했으나 최근 환경부에서 재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니도’ 등 원예용으로 사용 많아
전 세계적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는 이처럼 도마 위에 올라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 시장에서 이 계통의 농약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 것인가.
2009년 12월 한국작물보호협회에 취합된 각 제품별 판매금액을 살펴보면 네오니코티노이드계통으로 알려진 이미다클로프리드, 클로티아니딘, 티아클로프리드, 디노테퓨란, 아세타미프리드, 티아메톡삼 등의 매출액은 약 1706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표 2> 농약 전체 매출이 1조3000억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약 12%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들 원제는 바이엘크롭사이언스, 스미토모화학, 미쯔이화학, 닛폰소다, 신젠타 등의 원제사에서 공급되고 있다.<표 1> 이미다클로프리드는 사업 연한이 10년이 넘어 현재 시장에는 카피제품도 많이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농약 전문가들은 그러나 아직까지는 바이엘에서 공급하는 오리지널 원제가 국내에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작물에 등록
이들 원제사들이 국내에 공급하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는 거의 전 제조회사에서 제품으로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표 3> 이 계통의 살충제는 진딧물을 비롯해 총채벌레, 벼물바구미, 벼멸구, 꽃매미 등 다양한 해충에 효과적이다.
특히 대표 제품인 코니도 등은 원예용으로 소비되는 양이 많다.<표 4> 그만큼 꿀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꿀벌에 영향이 높은 것은 업계에서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 같은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 계통의 살충제가 시중에 널리 퍼져 있는 까닭은 그만큼 살충력이 강하고 약해 없이 안전한 ‘팔방미인’이기 때문이다.
실제 등록된 작물만 해도 가지, 감, 감귤, 감자, 감초, 거베라, 고추, 브로콜리, 더덕, 돌나물, 들깨, 딸기, 매실, 배, 벼, 복분자, 복숭아, 사과, 수박, 오미자, 오이, 인삼, 자두, 장미, 차, 착색단고추, 참다래, 참외, 토마토, 포도, 홍화, 황기 등 거의 모든 작물에 등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이들 계통의 농약은 ‘꿀벌에 잔류 독성이 강하므로 꽃이 피기 3일 전(또는 6일 전)부터 꽃이 완전히 지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말고, 일시에 광범위한 지역에 살포하지 말라’는 안전사용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EU 등의 연구팀들은 종자에 코팅한 네오니코티노이드계통의 살충제가 꿀벌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원예용으로 살포되는 부분도 꿀벌에 대한 영향을 새로 검토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U 따라잡기 분위기, 대체제 모색 적극 나설 때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부터 EU, 미국 등에서 등록 취소 된 농약 155개 품목에 대한 재검토가 전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문제가 있는 농약들은 국내에서도 선진국의 조취에 발맞춰 재등록 또는 등록 취소 등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리 정부의 기조 상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도 안심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농진청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4월 “국내 등록과정에서 이미다클로프리드의 꿀벌에 대한 독성시험을 거쳤기 때문에 당장 재평가를 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발표 이후 미국·유럽연합(EU) 등 각국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면서 승인취소 등 추가적인 조치가 나오면 우리도 즉각 반영할 방침”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대부분 문제가 거론되는 농약들은 사용한지 몇 십년이 경과된 농약들이 대부분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은 그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농약으로 볼 수 있어 그 파장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농약 한 품목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대략 15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신물질이 개발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다 최근 들어서는 그마저도 기간이 점점 오래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대체제를 거론하기는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다.
게다가 네오니코티노이드계통과 같이 효과적이면서 다양한 작물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약제는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품목을 포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4년 후 인류가 멸망한다”고 말한 것처럼 꿀벌에 대한 안전성은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업계가 이 같은 문제를 쉬쉬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